
[더팩트|우지수 기자] 국내 정유기업들이 주유소 가격 체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에너지가 업계 처음으로 주유소 공급가를 미리 알리고 사후정산을 없애는 새 가격 제도를 내놨다. 다른 정유사들도 유사한 제도 도입을 저울질하고 있어, 중동 전쟁으로 가격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번 움직임이 업계 전반으로 번질지 주목된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주유소 공급가격을 정하는 방식을 손질하고 있다. 지난 4월 중동 전쟁을 계기로 국회와 정부, 정유·주유소 업계가 참여한 사회적 대화에서 사후정산제 개선과 거래구조 투명성 강화에 합의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이 가운데 SK에너지가 업계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가격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다. 주유소 공급가격을 일주일 단위로 사전 고지하고 사후정산을 폐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명확한 가격 결정 기준 및 주유소별 거래조건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확정한 주 단위 공급가격을 주유소 등 유통 고객에게 미리 알려주는 방식이다.
이같은 가격 제도는 정부의 최고가격제 종료 이후 도입될 예정이다. SK에너지는 업계 처음으로 관련 제도를 도입하는 정유사가 될 전망이다. 사후정산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제품을 공급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 국제유가와 환율 등을 반영해 최종 공급가격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주유소로서는 매입 원가를 미리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판매가격을 정해야 해 경영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다른 정유사들도 관련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사후정산제 관련 상생협약 사안에 따라 공급가격을 주간 단위로 사전 고지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장 적용을 위한 작업도 이어가는 것으로 전해진다. HD현대오일뱅크 또한 이를 도입하기 위한 내부 준비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쓰오일(S-Oil)의 경우 이미 사후정산제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정유사들과 차이를 보였다.
제도 개선이 이뤄지면서 주유소는 물론 소비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리 고지된 공급가격을 기반으로 전국 주유소 판매 가격 결정이 가능한 만큼 유통 고객의 매입가격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한편 소비자 가격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기업이 단순 가격 경쟁을 넘어 책임 있는 에너지 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지는 계기 될 수 있단 평가다.
특히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락하는 과정에서 국내 석유제품 가격 변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만큼, 이번 제도 개편이 시의적절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로 미국과 이란 전쟁 발발 106일 만인 지난 14일(현지시간) 종전 양해각서가 발표됐고 17일 양국이 각각 서명하며 합의를 매듭지었지만 국내 석유제품 가격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제제품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가격 체계 개편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SK에너지는 SK주유소 차량용 경유 판매가격을 리터당 50원 인하하기로 했다. 직영주유소 73곳은 23일부터 판매가격을 리터당 50원 내리고 자영주유소도 같은 수준 인하가 가능하도록 할인 지원금을 지급한다. 석유 최고가격제가 종료하는 시점까지 한시적으로 최장 한 달 간 운영된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안보 경쟁력이 단순 비축 물량이나 정제 능력을 넘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가격 체계와 시장 운영 역량이 중요할 것"이라며 "이번 제도가 실제 거래가격까지 사전 확정하는지도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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