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원·달러 환율이 1530원대 중반에서 높은 수준을 이어가면서 은행권의 외화자금 관리에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고환율은 달러예금과 환헤지 상품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지만 수입기업과 외화대출 보유 기업의 비용·상환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외화예금 등 자금 조달 기반을 관리하는 한편 기업 차주의 환리스크가 여신 건전성으로 번지지 않도록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24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4.2원 내린 1534.9원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장 초반 소폭 하락했지만 1530원대 중반에서 움직이며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중동 정세와 국제유가 흐름, 외국인 국내 증시 자금 이동, 달러화 강세 여부에 따라 1500원대 초중반에서 큰 폭으로 등락하고 있다.
환율이 장중 하락하더라도 고환율 국면이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화 약세를 이끌었던 지정학적 불안과 위험회피 심리가 완전히 걷히지 않은 데다 수입 결제와 해외투자 수요가 겹치는 시기에는 달러 수요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제유가 안정과 외국인 자금 유입,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원화 수요 확대가 이어질 경우 환율 상단은 점차 낮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단기 방향성보다 1500원대에서의 변동성이 얼마나 길어질지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전날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달러당 1530원대 중반의 원·달러 환율 수준이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에 비해 과도하다는 인식을 밝혔다. 수출 호조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도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차익실현성 매도와 포트폴리오 조정이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환율이 이어지면 개인과 기업의 외화 보유 및 환리스크 관리 수요가 커질 수 있다. 해외 유학·여행·투자, 수입 결제 등을 앞둔 개인과 기업은 달러예금을 활용할 수 있고 수출기업은 수출대금을 외화로 보유하거나 선물환·통화스와프 등을 통해 환율 변동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
다만 고환율이 곧바로 달러예금 증가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미 환율이 높은 구간에서는 신규 달러 매수에 따른 환차손 부담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는 단순 외화예금 잔액의 증감보다 예금 만기와 통화별 자금 구조, 수출입 기업의 결제 수요, 외화대출과 무역금융 수요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은행에는 외화예금이 외화대출과 무역금융, 해외투자 관련 거래 등을 위한 자금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외화예금 유입이 외화유동성 개선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외화예금의 만기와 기업의 외화자금 수요, 해외 차입 여건이 맞물리는 만큼 은행들은 외화자금의 조달·운용 만기 구조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외화유동성 여건 자체는 양호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은의 3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미 달러화 자금시장의 조달 여건은 양호했고 국내은행의 대외 외화차입 가산금리도 중장기물을 중심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다만 이는 외화자금 시장의 전반적인 조달 여건에 대한 평가인 만큼, 고환율 장기화에 따른 개별 기업의 환리스크와는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국도 외환시장 수급 안정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외환당국은 국민연금과 650억달러 한도의 외환스와프 거래를 2026년 말까지 연장했다. 국민연금이 해외투자 과정에서 필요한 달러를 현물환 시장에서 직접 매수하는 수요를 줄여 환율의 일방적인 상승 기대를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한국은행은 올해 1월 8일부터 7월 8일까지 6개월간 금융기관의 1개월간 대고객 외화예수금(엔화 제외)에 따른 필요지준예치금을 초과하는 미 달러화 예치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대상은 국내은행 19곳과 외은지점 28곳 등 47개 금융기관이다. 한국은행은 이를 통해 금융기관이 주로 해외에서 운용하던 외화자금을 국내에서 리스크 대비 안정적인 이자 수익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하고 외화자금 운용처 확대에 따라 기업과 개인의 해외 단기자금 일부가 국내로 유입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고환율의 부담은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수출기업은 원화 환산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원자재와 부품을 수입하는 기업은 원가 압박을 받는다. 특히 납품단가나 판매가격에 환율 상승분을 바로 반영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은 수익성 저하와 운전자금 수요 확대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은행권도 기업의 업종별 수출입 구조와 외화 현금흐름을 더 세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외화대출을 보유한 기업은 원화 기준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고, 수입기업은 환율 상승이 재고 확보와 원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환헤지 상품은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환율 방향성이 불확실한 구간에서는 헤지 비용과 상품 구조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필요하다.
1500원대 고환율 국면에서 은행권의 과제는 외화유동성과 기업 여신 리스크 사이의 균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외화자금 조달 여건이 안정적이라는 평가가 이어지더라도 환율 변동성이 길어질수록 수입기업과 외화부채 보유 기업의 부담은 커질 수 있다. 달러예금과 환헤지 수요가 은행권 외환 사업의 기회가 될지, 기업 여신의 건전성 변수로 번질지는 향후 환율 흐름과 기업별 대응 여력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환율이 1500원대에서 오래 머물수록 은행이 봐야 할 것은 외화유동성 지표만이 아니라 개별 기업의 수입 비중과 외화부채, 환헤지 여부에 따른 상환 여력 변화"라며 "수입 원가 부담이 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운전자금 수요와 수익성 악화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어 업종별 여신 관리와 환리스크 상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