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전체 취업자와 제조업 일자리가 감소한 가운데 반도체 호황에 따른 정보기술(IT) 부문의 대규모 성과급이 임금과 물가의 상방 압력을 높일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경기 회복의 온기가 고용시장 전반으로 퍼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부 수출 대기업의 높은 보상이 다른 업종의 임금 협상과 소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진단이다.
19일 한국은행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5월 취업자 수는 2912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만명 감소했다.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줄어든 것은 2024년 12월 이후 1년 5개월 만이다.
제조업 고용 부진은 더욱 두드러졌다. 제조업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4만명 줄어 2019년 2월 이후 7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제조업 취업자는 2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업 취업자도 8만9000명 줄었다.
제조업 고용 감소는 반도체보다 자동차와 고무·플라스틱 등 다른 제조업종의 부진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수출과 일부 대기업 실적은 빠르게 개선됐지만, 이 같은 호황이 제조업 전체의 고용 증가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은 셈이다.
반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는 기업 실적과 임금에는 강한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은이 17일 열린 '2026년 상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IT 부문 특별급여는 전년 동기 대비 60.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명목임금 상승률은 3.4%였으며, 이 가운데 IT 부문 특별급여의 기여도는 1.3%포인트로 집계됐다. 이는 2012년부터 2025년까지의 과거 분포에서 97분위, 즉 상위 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한은은 주요 IT 대기업의 영업이익 전망 등을 고려하면 내년 초 IT 부문 특별급여의 명목임금 상승률 기여도가 과거 분포의 99분위인 상위 1% 수준을 웃돌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이처럼 고용 부진과 일부 IT 대기업의 임금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배경에는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라 회복 속도가 엇갈리는 이른바 ‘K자형 회복’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조업 전체의 고용은 줄고 있지만, 반도체 수출과 대기업 실적은 빠르게 개선되면서 경기 회복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설명회에서 "다른 지표들과 5월 고용지표가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며 "반도체와 IT가 주도하는 회복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고 원인과 지속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이 주목하는 것은 성과급 자체보다 일부 기업의 높은 보상이 다른 산업의 정액급여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특별급여는 일회성 성격이 강하지만 다른 기업과 근로자들이 이를 임금 협상의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이면 기본급과 정기수당 등 지속성이 높은 정액급여까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파급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IT 기업의 높은 보상이 숙련 인력의 이동을 촉진하면 다른 기업들도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임금을 올릴 수 있다. 다른 업종의 근로자가 IT 업종의 임금을 기준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준거임금' 경로도 작동할 수 있다.
성과급을 받은 근로자의 소비 증가도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득이 늘어난 IT 종사자들이 외식과 유통, 여가 등 서비스 소비를 확대하면 해당 업종의 매출과 노동 수요가 증가하고, 다시 임금과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통상적인 수준의 IT 특별급여 증가는 모든 업종의 임금을 일률적으로 끌어올리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평균적인 수준의 특별급여 증가는 도소매·음식숙박·보건복지 등 노동집약적 서비스업과 건설업의 정액급여에 주로 영향을 미쳤다. 제조업과 금융·전문과학기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임금 반응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반면 IT 부문 특별급여 상승 폭이 과거 분포의 90분위에 이를 정도로 커지면 다른 산업의 정액급여 상승률이 0.02~0.03%포인트 추가로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특별급여 증가 폭이 95분위 수준까지 확대되면 영향을 받는 업종과 임금 상승 폭도 더 커졌다.
소비자물가도 특별급여 지급 규모에 따라 반응이 달랐다. 평균적인 수준의 특별급여를 지급하는 사업체가 늘어날 때는 소비자물가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상위 10% 수준의 고액 특별급여를 지급하는 사업체 비중이 늘어날 때는 물가가 유의하게 상승했다.
한은이 과거 사업체 자료를 토대로 추정한 결과, 고액 특별급여를 지급하는 사업체 비중이 늘어날 경우 약 5개월 뒤 소비자물가가 0.05%포인트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다만 이는 올해 IT 성과급이 실제 소비자물가를 0.05%포인트 끌어올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과거 자료를 활용한 조건부 추정치다.
한은 관계자는 "0.05%포인트는 과거 자료로 추정한 숫자"라며 "이번에는 이례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제시한 숫자보다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한은은 소비가 이미 물가를 강하게 밀어 올리는 단계라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4월까지의 공식 통계와 5월 모니터링 결과를 토대로 소비가 부진하지는 않지만, 수요 측 물가 압력으로 작용할 정도로 크게 뛰는 상황도 아니라고 평가했다.
이번 분석이 IT 기업이나 노동계에 임금 인상을 자제하라고 요구하는 취지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특정 업종에 집중된 대규모 성과급이 노동 이동과 임금 협상, 소비를 통해 경제 전반에 전달되는 경로를 중립적으로 분석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지금까지 비용 측 물가 압력을 계속 강조했지만 이번에는 수요 측 압력도 5월 통화정책방향 회의 당시보다 조금 더 강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호황이 고용시장 전반의 회복으로 이어지기 전에도 임금과 소비 경로를 통해 물가에는 먼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향후 물가 흐름은 IT 부문의 일회성 성과급이 다른 업종의 기본급과 정기수당 인상으로 확산되고, 서비스 소비와 가격을 실제로 끌어올리는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이승훈 KB금융연구소 경제연구센터장은 "IT 대기업의 이례적인 성과급이 다른 업종의 임금과 서비스 소비로 확산될 경우 물가 상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할 만한 리스크"라면서도 "비IT 업종의 수익성이 좋지 않고 성장도 반도체에 편중된 데다 고용시장 전반의 회복이 더딘 만큼, 이러한 파급이 단기간에 광범위하게 나타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과급은 변동성이 큰 일시소득의 성격이 강해 소비보다 자산이나 저축으로 흡수되는 부분도 적지 않을 것"이라며 "임금발 물가 압력은 당장 통화정책 결정을 좌우할 직접적인 계기라기보다 흐름을 지켜봐야 할 관찰 변수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 센터장은 "기준금리 인상 시점은 임금 자체보다 유가 충격이 근원물가로 전이되는 정도와 연초 성과급 지급 이후의 임금 흐름 등을 함께 확인한 뒤 종합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