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정산 기자] 1분기 도입 예정이었던 '8주룰' 도입을 놓고 손해보험사의 셈법이 복잡하다. 과잉진료를 예방하고 손해율 개선을 도모할 수 있지만, 다음 해 보험료 추가 상승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다. 도입 초기 가입자와 보험사간 분쟁이 급증할 수 있다는 점도 적잖은 부담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도입을 예고했던 '8주룰'이 무기한 연기된 채 아직까지 적용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8주룰은 자동차보험 경상환자(상해등급 12~14급)가 사고 후 8주를 넘겨 치료받을 경우 추가 치료 필요성을 별도로 심사받도록 하는 제도다. 그간 자동차보험은 실손보험과 함께 '적자보는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업계는 과잉진료를 억제해 손해율을 낮추고 선량한 보험 가입자의 이익을 키울 수 있다고 기대한다.
8주룰은 국토교통부와 금융당국이 지난 2021년 발표한 자동차보험 제도개선 방안의 후속 조치다. 경상환자 장기 치료 급증에 따른 보험금 누수 문제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8주 이상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진단서와 치료 경과 자료를 제출해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보험업계는 과잉진료와 나이롱 환자를 없애기 위한 초석이라고 본다.
실제로 8주 이상 장기 치료 환자의 87.8%가 한방병원 이용자로 나타났다. 보험업계는 모든 환자를 과잉진료 사례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다만 경미한 사고에도 향후 합의금이나 보험금 지급을 고려해 장기간 입원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일부 가입자의 과잉진료가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으로 전가되는 구조인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8주룰 도입이 연기된 배경에는 한의계와 소비자단체의 반발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올해 1분기 시행을 목표로 했지만, 치료 선택권 침해 논란과 심사 기준 미비 문제로 시행 시점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한의계는 경상환자라도 개인별 증상과 후유증이 다르다고 본다. 일률적 기준으로 치료를 제한하는 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여전히 보험업계는 8주룰 도입 시 손해율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자동차보험은 최근 수년간 정비요금 상승과 진료비 증가, 경상환자 장기 치료 확대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업계가 적정 수준으로 보는 손해율 80~82%를 주요 손보사 대부분이 웃돌고 있다. 불필요한 장기 치료가 줄면 보험금 누수를 막고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도 낮출 수 있다는 의견이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다시 상승세를 보이는 점도 8주룰 도입 필요성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지난 4월 기준 주요 손보사 4곳(삼성화재·현대해상·KB·DB손해보험 )의 누적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평균 85.8%로 지난해 동기 대비 2.5%포인트(p) 상승했다. 경상환자 장기 치료와 한방 진료비 증가 등이 손해율 악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과잉진료를 억제해 손해율 상승세를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손해율이 개선되면 보험료 인상 명분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손보업계는 보험료 인하 기조를 유지했다. KB손해보험은 지난 2022년 1.4%를 인하했고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2.0%, 2.6%씩 낮췄다.
삼성화재 역시 지난 2022년 1.2%를 시작으로 △2023년(2.1%) △2024년(2.8%) 순으로 보험료를 낮췄고, 올해는 1.0% 인하를 단행했다. DB손해보험과 현대해상도 올해 각각 0.8%, 0.6%의 보험료 인하를 결정하는 등 금융당국의 상생금융 기조에 발맞추는 행보다.
민원 증가도 고민거리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주요 손보사 4곳의 자동차보험 민원은 총 2537건으로, 직전 분기 2322건보다 215건 늘었다. KB손해보험이 426건에서 489건으로 14.8% 증가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어 삼성화재와 DB손해보험이 각각 12.4%, 10.5% 상승했다. 현대해상만 유일하게 2.7% 감소했다.
자동차보험은 실손보험 다음으로 민원이 많은 상품군으로 통한다. 특히 지급 기준과 과실비율, 치료기간 등을 둘러싼 분쟁이 잦다. 8주룰 시행 시 치료 연장 불승인이나 보험금 지급 제한을 둘러싼 민원이 단기간에 급증할 수 있어, 손해율 개선 효과와 별개로 민원 관리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험업계가 선호하는 시나리오는 8주룰 도입과 보험료 인상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적자를 감수하며 판매를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다.
다만 현실적으로 보험료 인상 여건은 녹록지 않다. 자동차보험료는 소비자물가지수 산정에 반영되는 대표적인 금융상품으로 꼽힌다. 보험료가 오를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어 금융당국과 정부 모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수준에서의 소비자 규제와 보험료 인상, 과잉진료 단속 등이 모두 이뤄지면 좋겠지만,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라며 "합리적인 보험료 산출도 중요하지만, 가입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영업도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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