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미국과 이란이 개전 106일 만에 종전 합의에 도달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도 공급망 불확실성 해소에 대한 기대감이 나온다. 전쟁 기간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국제유가와 해상 운임이 안정세로 돌아서면 필수 의료제품의 생산 여건이 대폭 개선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전쟁 종식을 위한 기본 합의에 도달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기로 했다. 오는 19일 정식 서명식을 거쳐 60일간의 휴전에 돌입할 예정이다. 종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브렌트유 기준 국제유가가 하루 만에 4% 넘게 하락하는 등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종전 합의로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 기반 원부자재의 수급 안정화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의료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쓰이는 수액백, 주사기, 의약품 용기, 포장재 등은 대부분 에틸렌을 기초 물질로 하는 폴리에틸렌(PE) 소재로 만들어진다. 에틸렌 생산의 핵심 원료가 바로 중동 의존도가 높은 '나프타'다. 그간 전쟁 장기화로 나프타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일선 병·의원과 약국에서는 수액제와 주사기 등을 미리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중동전쟁의료용품수급대응단'을 꾸리고 선제적으로 매점매석 고시를 시행하는 등 현장 단속에 나서면서 우려했던 대란은 피했지만 기업들도 원가 부담을 피할 수 없었다"며 "호르무즈 해협이 정상화되면 원료의약품(API) 및 완제의약품 전반의 제조 원가 부담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현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산업혁신본부장은 "미·이란 간 종전 합의로 중동 지역의 긴장이 완화되면 해상 물류와 원료 수급의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며 "특히 나프타 수급 안정에 따라 수액백 등 필수 의료제품의 생산 여건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엄격한 온도 관리가 필수적인 바이오의약품과 원료의약품을 취급하는 기업들도 직접적인 수혜 대상이 될 전망이다. 특히 방사성의약품(RPT)이나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등 유효 기간이 짧아 항공 운송 의존도가 높은 신공법 바이오텍들과 글로벌 고객사를 둔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대형 CDMO 기업들은 대다수 원부자재와 완제품을 콜드체인(냉장물류) 항공편으로 실어 나르기 때문에 물류비 변동에 민감하다"며 "운송비가 안정화되면 글로벌 고객사들의 비용 부담이 줄어들어 국내 CDMO 기업들의 수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종전 합의가 공식화되더라도 실제 물류망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신중론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석유화학 업계의 공조로 대체 원유를 확보해 최악의 공급 중단 사태는 막았지만, 수개월간 인상된 원가는 제약사가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며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전쟁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편중된 해외 원료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며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 가능한 의약품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원료의약품 자급화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