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의 블랙록이 한국 증시를 쓸어 담고 있다. 국내 대표 상장사들의 지분율을 공시 의무 기준인 5%를 넘어서면서까지 확보하는 적극적인 행보도 주목을 받는다. 코스피가 종전 기대감으로 다시 상승 랠리를 이어가는 가운데, 글로벌 거대 자본이 국내 증시에 베팅을 이어가는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16일 금융투자업계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블랙록은 최근 KT&G의 지분율을 기존 5.01%에서 6.15%까지 확대했다. 올해 초 공시 의무 기준인 5% 벽을 넘은 지 불과 4개월 만에 수십만 주를 추가로 쓸어 담은 결과다.
블랙록의 '국장' 매집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국내 4대 금융지주의 지분도 각각 6% 안팎까지 꽉 채워 확보하며 주요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또한 블랙록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수혜주인 삼성전자(5.07%)와 SK하이닉스(5.00%)를 비롯해 글로벌 신약 모멘텀을 보유한 유한양행(5.07%)과 HLB(6.05%)의 지분을 5~6%대까지 적극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여기에 최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5.21%) 지분까지 5% 이상 신규 취득하는 등 업종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 매집으로 국내 증시 내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가 한국 자본시장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으로 우선 국내 기업들의 실적 개선세를 꼽는다. 최근 지분을 더 늘린 KT&G의 경우, 글로벌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에 힘입어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7.6% 급증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도 해외 시장을 개척하며 사업 능력을 입증한 것이 외국인 투자자의 투심을 자극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력한 주주환원책도 주효한 모양새다. 블랙록이 집중 매수한 금융지주사들과 KT&G 등은 최근 대규모 자사주 소각 규모와 분기 배당 확대 등을 국내 최고 수준으로 책정하고 주주친화 정책을 펼치는 대표적인 종목들이다. 장기 투자를 지향하는 글로벌 운용사 입장에서 든든한 배당 수익과 기업들의 자발적인 주주가치 제고 의지는 매력적인 투자 유인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국내 증시가 글로벌 인공지능(AI) 하드웨어 밸류체인의 핵심 수혜국으로 부상한 점도 거시적인 이유로 작용한다. 블랙록은 앞서 한국 증시의 투자의견을 '비중확대(Overweight)'로 상향 조정하면서 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따른 코스피 기업들의 이익 개선 추세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블랙록의 이러한 지분 5% 이상 대량 보유 공시는 단순한 시세 차익 목적을 넘어 해당 기업의 경영 구조와 장기 성장성에 동행하겠다는 시그널이라는 게 증권가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특히 블랙록의 패시브나 액티브 자금이 전방위로 유입되는 것은 국내 증시 전반의 신뢰도를 높이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세계 최대 운용사인 블랙록이 공시 의무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지분을 늘리는 것은 한국 기업들의 저평가 국면이 해소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글로벌 연기금이나 타 대형 운용사들의 연쇄적인 패시브 자금 유입을 이끄는 마중물 역할을 할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