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우지수 기자] '배터리 아저씨'가 법정에 섰다. 한때 2차전지 투자 열풍의 상징이었던 박순혁 씨는 1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를 '중국 간첩'으로 지목한 게 화근이 됐다. 검찰은 징역 8개월을 구형했다.
박 씨는 증권업계 출신이다. 대한투자신탁(현 하나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고 이후 2차전지 소재 기업 금양에서 홍보이사를 맡았다 그의 이름이 대중에 알려진 시기는 2차전지 열풍이 불던 2022~2023년이다. 금양의 배터리 사업 진출을 적극 알리고 유튜브와 방송에서 "K배터리는 저평가됐다"는 주장을 펼치며 '배터리 아저씨'로 불렸다. 기관과 외국인의 공매도를 강도 높게 비판해 개인 투자자들의 지지를 얻었고 2023년 2월 펴낸 'K배터리 레볼루션'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가 홍보 전면에 섰던 금양은 2023년 6월 코스피200지수에 편입됐고 같은 해 7월에는 주가가 장중 19만4000원까지 치솟으며 시가총액 10조원에 육박했다. 부산의 발포제 화학회사가 'K배터리 대장주'로 불리게 된 순간이다. 박 씨가 추천한 LG에너지솔루션·에코프로 등 '2차전지 8대 종목'에는 개인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정작 박 씨는 정점을 앞둔 그해 5월 이미 금양을 떠난 뒤였다.
다만 이같은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2023년 하반기 들어 전기차 수요 정체(캐즘)로 업황이 꺾이며 추천 종목 주가가 급락했고 박 씨의 종목 추천을 둘러싼 비판도 커졌다. 금양은 무리한 사업 확장 끝에 불성실공시법인과 관리종목으로 지정됐고, 지난해 3월 감사의견 거절로 거래가 정지됐다. 직전 주가는 9900원으로 최고가 대비 약 95% 폭락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20일 금양의 상장폐지를 의결했다.

금양을 떠난 뒤 2024년 3월에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열고 경제·정치 평론가로 활동 폭을 넓혔다. 그러나 기업과 총수를 겨냥한 발언은 거듭 법적 분쟁으로 돌아왔다. 반도체 장비업체 한미반도체를 '거품주'로 표현했다가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약식기소됐고, 지난해 1월에는 김 이사를 '중국 간첩'으로 지목했다가 이번 재판에 넘겨졌다.
박 씨는 지난해 1월에 올린 '중화선거관리위원회가 저지른 범죄의 재구성 1편' 영상에서 "SK가 사실은 친중적이고 위험한 행태를 많이 보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김희영"이라며 "그게 다 연결돼 있다. 중국 간첩일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SK하이닉스를 중국 것으로 만들려면 중국인을 후계자로 만들면 된다"며 김 이사 자녀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시나리오까지 언급했다. 반도체가 절실한 중국이 HBM 선두인 SK하이닉스를 노린다며 최 회장의 이혼과 경영권 문제까지 끌어들인 주장이었다.
박 씨는 이날 법정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단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나리오로 말한 것이라면서도 오해를 부른 발언이었다며 최 회장과 김 이사에게 사과했다. SK 측이 문제를 제기한 지 약 2주 만에 사과 방송을 올려 정정하고 문제 영상도 삭제했다는 점을 들어 선처를 호소했다. 같은 피해자를 둘러싼 유사 사건에선 이미 징역형이 나온 상황이다. 최 회장과 김 이사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는 지난 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시장을 향해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던 '배터리 아저씨'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이날 재판의 선고는 다음 달 9일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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