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 끝났는데 또 미뤄진 디지털자산기본법…업계 "답답함 넘어 분통"
  • 박지웅 기자
  • 입력: 2026.06.08 00:00 / 수정: 2026.06.08 00:00
민주당 "하반기 속도전" 공언에도 핵심 쟁점 조율 여전
증권사는 거래소 지분 확보 경쟁…민간은 이미 다음 단계
6·3 지방선거가 마무리되면서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 재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정치권의 법안 발의와 핵심 쟁점 조율은 여전히 지연되면서 업계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국회=남윤호 기자
6·3 지방선거가 마무리되면서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 재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정치권의 법안 발의와 핵심 쟁점 조율은 여전히 지연되면서 업계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국회=남윤호 기자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6·3 지방선거가 마무리되면서 그동안 정치 일정에 밀려 있던 디지털자산기본법(가상자산 2단계 법안)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법안 발의와 핵심 쟁점 정리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업계에서는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고 유럽연합(EU)은 가상자산 규제 체계인 가상자산시장법(MiCA)를 시행 중이다. 일본과 홍콩 역시 디지털자산 산업을 미래 금융산업으로 육성하며 시장 선점 경쟁에 나서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디지털자산 산업의 근간이 될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8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스테이블코인의 확산과 금융시스템 재편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디지털자산TF에서 몇 가지 쟁점들을 막판 조율하는 과정에 있다"며 "디지털자산기본법은 하반기 국회에서 굉장히 속도감 있게 논의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역시 관계기관 협의를 마무리한 뒤 하반기 국회 입법 논의가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하반기 속도전"이라는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을 뿐 실제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특히 지방선거까지 마무리된 만큼 더 이상 입법을 늦출 명분도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지방선거 전에는 정치 일정 때문에 늦어진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 이유도 사라졌다"며 "산업계 입장에서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는 수개월째 주요 쟁점에 발목이 잡혀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 중심으로 할 것인지, 일정 요건을 갖춘 비은행 사업자에게도 허용할 것인지가 대표적이다.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2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 역시 업계 반발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논의가 길어지는 동안에도 정작 산업이 필요로 하는 실행 방안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발행 주체(은행·비은행), 준비자산 100% 의무화 여부, 이자 지급 허용 범위, 감독 권한을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가운데 어디에 둘 것인지, 해외 스테이블코인 규제 방식, 코인런 대응 방안 등 거시적 규제 이슈에 집중돼 왔다.

반면 실제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와 송금, 자산 거래에 어떻게 활용되고 기존 금융 인프라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타이거리서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1년간 논의는 세 가지 규제 축을 벗어나지 못했고 정작 스테이블코인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는 공식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며 "발행 허용은 시작일 뿐, 실행 구조가 없으면 규제도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시장은 이미 다음 단계로 움직이고 있다. 올해 들어 미래에셋그룹은 코빗 최대주주에 올랐고, 하나금융그룹은 두나무 지분 약 1조원어치를 확보했다. 한화투자증권과 삼성증권 역시 두나무 지분 투자에 나섰으며,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코인원 지분 20%를 인수하며 전략적 협력 관계 구축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재무적 투자가 아니라 디지털자산 시대 주도권 확보 경쟁으로 해석한다. 토큰증권(STO), 스테이블코인, 가상자산 현물 ETF, 수탁(커스터디) 사업 등이 본격화될 경우 전통 금융회사와 가상자산 거래소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은 이미 디지털자산이 미래 금융 인프라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고 수천억원 단위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며 "민간은 뛰고 있는데 제도는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비트·빗썸·코인원 등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영업정지 처분이 잇따라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을 받으면서 규제 실효성과 감독 방식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 모습. /뉴시스
업비트·빗썸·코인원 등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영업정지 처분이 잇따라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을 받으면서 규제 실효성과 감독 방식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 모습. /뉴시스

규제 환경 역시 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최근 법원은 코인원에 대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영업 일부정지 3개월 처분 효력을 정지했다. 앞서 업비트와 빗썸 역시 집행정지 결정을 받으면서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FIU의 영업정지 처분은 모두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업계에서는 자금세탁방지와 이용자 보호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적발·처벌 중심의 규제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FIU가 최근 특금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해외 사업자 규제 강화와 가상자산 이전 보고 의무 확대 등을 추진하면서 규제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황석진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자금세탁방지와 투자자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규제의 목적은 시장 위축이 아니라 시장의 건전한 성장이어야 한다"며 "디지털자산 산업은 글로벌 경쟁 산업인 만큼 육성과 규제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홍콩, 일본은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규제와 감독 논의가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며 "입법 지연까지 장기화되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는 하반기 국회에서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방선거가 끝난 만큼 민주당도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더 이상 미루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당 지도부 역시 주요 경제 입법 과제로 보고 있어 하반기에는 처리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정무위원회 역시 지도부 정책 기조와 보조를 맞출 수 있는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지금보다는 입법 동력이 강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chris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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