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정산 기자]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5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했지만, 판매 주체인 손해보험사는 영업과 홍보에 소극적인 태도다. 정부가 과잉진료 예방을 위해 강도 높은 규제를 단행하는 가운데 손해율이 개선될 것이란 셈법이 나오면서다. 한동안 정부와 의사협회, 소비자 반응 등을 살피면서 실손 영업 속도를 조절할 전망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비급여 진료 항목에 관한 전방위적 규제에 나섰다. 우선 보건복지부는 이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어 도수치료의 관리급여 전환 기준과 최종 가격을 결정할 예정이다. 다음달 도입을 목표로 행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며, 현재 유력한 안건은 도수치료 상한가를 4만원 혹은 4만3000원선에서 결정하는 방안이다.
관리급여 체계란 건강보험 적용을 받더라도 환자 부담률이 95%에 달하는 구조다. 수가가 4만 원으로 확정될 경우 보험 혜택은 2000원에 그치며, 나머지 3만8000원은 환자 몫으로 돌아간다. 여기에 도수치료 실손보험 청구 횟수도 주 2회, 연간 최대 15회까지만 인정하며, 수술이나 재활 등 의학적 소견이 반영되더라도 연간 최대 24회 수준으로 제한할 전망이다.
체외충격파 치료에도 고삐가 죄어진다. 의학적 가이드라인에 따라 체외충격파 실손보험금 지급을 연 12회로 제한하며, 초과한 시술 비용은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단일 부위는 6회까지 허용하며, 복수 부위를 치료받더라도 연간 합산 횟수는 12회를 넘길 수 없다.
불건전한 영업 행위에도 제재를 강화한다. 실손보험 보장을 과장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홍보해 환자를 유인한 의사에게는 최대 6개월간 면허 정지 처분이 내려진다. 비급여 과잉진료와 실손보험 악용을 막기 위한 조치인데 치료 효과를 단정적으로 표현하거나 부작용 정보를 누락한 광고 등도 제재 대상에 포함된다.
이같은 정부 조치에 의료계와 보험업계의 온도차가 선명하다. 의료계는 도수치료의 경우 환자 상태와 증상에 따라 치료 방식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수가를 획일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의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조치라고 반발한다. 반면 보험업계는 그간 도수치료·체외충격파·백내장 수술 등이 실손보험금 누수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의 규제 방안이 나오면서 5세대 실손 영업도 관망세에 돌입했다. 5세대 실손보험은 보험료를 낮추는 대신 비급여 항목의 자기부담률을 높이는 것이 주요 골자다. 소비자의 자율적 선택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인 만큼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등 비중증 비급여 항목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출시를 앞두고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비급여 치료 이용 빈도가 낮은 가입자만 보험 리모델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정작 손해율을 끌어올리는 비급여 이용자의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본 취지가 무색하다는 판단이다.
업계는 5세대 실손을 보완 상품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다만 규제 안착 추이를 지켜보며 전략을 조율하고, 비중증 비급여 제외로 도수치료·체외충격파 수요가 얼마나 감소할지 등 시장 영향을 우선 점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정부 정책에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자칫 실손 혜택 축소가 소비자 피해로 비칠 수 있는 데다, 보상 축소 방안에 보험사가 전면에 나설 경우 브랜드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비중증 비급여 항목 축소 여파를 살피겠다는 구상이다. 도수치료·체외충격파 등이 보상에서 제외한 만큼 규제안이 의료 시장 연착륙에 실패할 경우 소비자 민원으로 번질 수 있다. 이 밖에도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는 만큼 불필요한 잡음은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정부 규제안이 시장에 안착할 경우 오히려 기존 1~4세대 실손 가입자를 유지하는 편이 보험사에 유리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손해율 악화의 주범이었던 비급여 항목이 축소되는 만큼 원수보험료가 높은 기존 실손이 보험사 수익 측면에서 더 매력적이라는 계산에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체외충격파나 도수치료가 보험금 누수의 주원인으로 지목받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의료계는 정반대 입장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보험혜택 충소는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보단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kimsam119@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