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대외적으로 표기되는 의약품 공식 고시 가격은 높게 유지하되, 국내 건강보험 청구 및 심사에는 이보다 낮은 실제 합의 가격을 적용하는 '약가유연계약제'가 다음 달 1일부터 전격 시행된다. 이번 제도 도입으로 국내 개발 의약품의 글로벌 수출 가격을 방어하는 동시에, 다국적 제약사가 혁신 신약의 국내 출시를 기피하던 현상을 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약가유연계약제의 첫 주자는 8개사 12개 품목으로 확정됐다. 한국아스텔라스제약의 전립선암 치료제 '엑스탄디정', 한국애브비의 중증 건선 치료제 '스카이리치',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유방암 치료제 '파슬로덱스'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제약사로는 대웅제약의 위식도역류질환 신약인 '펙수클루'와 그 위임 제네릭인 벨록스캡정, 위캡정, 앱시토정 등이 내달부터 이중약가를 적용받는다. 대웅제약의 당뇨 신약 '엔블로정'도 약가유연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글로벌 제품들과의 경쟁력 확보, 해외 수출 단가 방어가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약가유연계약제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가 의약품 계약을 체결할 때 대외 공식 고시 가격인 '상한금액표 금액(표시가)'과 실제 국내 건강보험 심사·지급 기준이 되는 '별도합의 상한금액(실제가)'을 다르게 설정하는 신설 제도다.
기존의 유사 이중약가제였던 '위험분담제(RSA)'의 행정적 비효율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 RSA 체계에서는 환자가 일단 비싼 고시가로 약값을 선결제한 뒤 사후에 제약사로부터 차액을 환급받아야 해 절차가 복잡했다. 반면 내달 도입되는 약가유연계약제는 병·의원과 약국이 처음부터 인하된 '별도합의 상한금액'을 기준으로 단가를 수납하고 급여를 청구한다. 환자는 별도의 환급 신청 없이 처음부터 낮아진 본인부담금만 결제하면 된다.
업계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동안 한국의 건강보험 약값은 글로벌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돼 왔다. 특히 신약 수출 시 수입국 정부가 한국의 낮은 약가를 기준으로 자국 약가를 깎아버리기도 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국산 신약을 우대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신약은 국내에서 낮은 약가가 책정되는데, 처방량이 많아지면 약가가 더 낮아져 수출 협상 때 불리해지는 문제가 있었다"며 "약가유연계약제로 국내 개발 약제의 대외 경쟁력과 약가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제도는 기존 RSA가 등재 단계의 일부 허가 신약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됐던 것과 달리 대상을 대폭 넓혔다. 이번 약가유연계약제는 약사법상 신약과 자료보호의약품, 희귀의약품, 첨단바이오의약품뿐만 아니라 국내 제약사들이 주력하고 있는 개량신약 및 동등생물의약품(바이오시밀러)까지 폭넓게 포함한다. 이에 따라 신약 외에도 매출 영향력이 높은 주력 전문의약품 전반에서 글로벌 약가 방어 효과가 나타나, 국내 R&D 생태계 선순환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글로벌 다국적 제약사 입장에서도 한국 시장 진출의 걸림돌이 사라지게 됐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 신약을 출시하게 되면 전 세계 최저가 수준으로 약가가 책정돼 향후 글로벌 약가 체계에서 불리해지다보니 글로벌 제약사들은 한국에 신약 출시를 미루기도 했다"며 "앞으로 이같은 행태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약가유연계약제는 국산 신약의 해외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며 "보험 등재 단계에서부터 이중약가제를 적용한다면 한국 약가를 참고하는 해외국가로의 수출 비중이 높을수록, 해외수출 금액이 증가할수록 약가유연제의 긍정적인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