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김태환 기자] 홍콩 H지수 ELS 사태 이후 은행권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가 줄어드는 가운데, 금융지주 차원의 자산관리(WM) 전략은 은행과 증권을 결합한 복합채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은행은 고객 접점과 예금·대출·신탁·연금 등 안정형 자산관리 기능을 유지하면서 고위험 상품 직접 판매 부담을 낮추고, 증권사는 투자상품 공급과 고액자산가 포트폴리오 관리를 맡는 방식으로 그룹 내 WM 역할 분담이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20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주가연계 파생결합증권·사채 발행 규모는 ELS 5조6000억원, ELB 7조4000억원 등 총 13조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9조9000억원과 비교하면 1년 새 31% 늘어난 수준이다. 원금 비보장형인 ELS 발행액은 5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4조8000억원 대비 16% 증가했고, 원금 보장형인 ELB 발행액은 7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5조1000억원보다 45% 늘었다.
ELS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인수·판매 주체별 무게중심은 은행에서 증권사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파생결합증권 발행·운용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파생결합증권 인수 규모는 증권사가 10조8000억원으로 전체의 41.9%를 차지해 가장 컸고, 은행은 7조8000억원으로 30.2%에 그쳤다. 2023년 은행의 파생결합증권 인수 비중이 63.8%로 증권사 17.6%를 크게 웃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홍콩 H지수 ELS 사태 이후 인수·판매 무게중심이 은행에서 증권사 쪽으로 이동한 모습이다.
이 같은 변화에는 홍콩 H지수 ELS 사태의 후폭풍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권은 과거 예금 대체 성격으로 ELS를 적극 판매했지만, 대규모 손실과 불완전판매 논란 이후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에 보수적으로 돌아섰다. 은행 창구에서 고위험 상품을 직접 권유할 경우 민원, 분쟁, 제재, 평판 리스크가 한꺼번에 불거질 수 있는 만큼 은행은 판매 부담을 줄이고, 증권 계열사가 투자형 상품 공급을 맡는 방식으로 역할이 나뉘고 있다.
다만 이는 금융지주가 WM 사업을 축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계대출 규제와 예대마진 압박으로 은행의 전통적 이자이익 확대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WM은 여전히 금융지주의 핵심 비이자이익원으로 평가된다.
금융지주들은 은행 창구의 고난도 상품 직접 판매는 줄이되, 은행·증권 복합채널과 패밀리오피스, 고액자산가 전담 점포를 앞세워 고객 자산을 그룹 안에서 관리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KB금융은 KB국민은행의 기존 'KB WISE 패밀리오피스'를 'KB the FIRST 패밀리오피스'로 리브랜딩하고, 투자전략·세무·법률·회계·부동산 전문가가 협업하는 전담 조직을 구축했다. KB국민은행은 올해 1월 말 약 1조1000억원 수준인 패밀리오피스 관리자산을 연내 2조원 규모로 확대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신한금융은 은행과 증권을 결합한 'One WM' 전략을 제시했다. 원 WM은 은행의 고객 기반과 증권의 투자상품·자본시장 솔루션을 결합해 고액자산가에게 예금·대출, 신탁, 투자상품, 세무·부동산, IB 연계 서비스 등을 통합 제공하는 전략이다.
이와 더불어 고액자산가 대상 통합 WM 브랜드 신한 프리미어(Premier)의 점포를 확대하고 있다. 신한 Premier는 현재 25개의 증권·은행 복합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PIB강남센터와 패밀리오피스 반포·청담·서울 등 4곳은 초고액자산가 전담 복합채널로 특화돼 있다.
하나금융은 비은행 부문 강화를 위해 지속성장부문을 신설하고 그 아래 리테일본부, WM본부, 자본시장본부 등을 편제했다. 은행 중심의 영업에서 벗어나 WM과 자본시장, 비은행 계열사 간 시너지를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하나증권도 패밀리오피스본부를 신설하는 등 고액자산가 대상 맞춤형 자산관리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금융은 증권업 재진입 이후 은행 중심이던 WM 체계를 은행·증권 결합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 2024년 8월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 합병으로 우리투자증권이 출범하면서 그룹 내부에 투자상품 공급 채널이 복원됐고, 우리금융은 이를 은행의 고액자산가 고객 기반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WM 경쟁력 보강에 나섰다.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은행과 증권의 역할 분담이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모두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은 예금·대출, 연금, 신탁, 상속·증여 등 안정적 자산관리 접점을 통해 고객을 유인하고, 증권사는 ELS, 채권, ETF, 랩어카운트, 대체투자 등 투자형 상품 공급을 맡는 방식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은행 단독 판매보다 복합채널을 활용하면 고객에게 더 다양한 상품을 제시할 수 있고, 그룹 차원에서는 고객 이탈을 줄이면서 비이자이익 기반을 넓힐 수 있다"면서 "다만, 고난도 상품 판매 기능이 증권 계열사와 복합채널로 이동한다고 해서 소비자보호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내부통제·소비자보호 체계도 정교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imthi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