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최근 삼천당제약의 부실 공시 논란으로 제약바이오 업종에 대한 투자자 불신이 고조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공시 제도를 전면 개편하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전문 용어가 난무하던 '깜깜이 공시'를 투자자 눈높이에 맞춘 '스토리형 공시'로 탈바꿈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투자자 보호와 신뢰 회복이라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공시 위축과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일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고, 향후 3개월간 공시 작성 기준과 방식 전반에 대한 재설계에 나섰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적용될 이번 개편안은 투자자가 파이프라인의 현재 위치와 향후 일정, 주요 리스크 등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당국은 기존의 단편적인 임상 단계 나열 방식에서 벗어나, 각 파이프라인의 성공 가능성과 변수, 기대 성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형식을 검토 중이다. 특히 기업공개(IPO) 단계에서부터 기업가치 산정 근거를 명확히 하고, 공시와 언론 보도 간의 괴리를 줄여 정보 비대칭을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당국은 그간 제약바이오 공시가 전문성과 불확실성이 높아 일반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렵고,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주가 변동성이 확대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최근 삼천당제약 사례처럼 공시와 실제 계약 내용 간 괴리로 시장 혼란이 커진 점도 제도 개선 필요성을 일으켰다. 계약 상대방을 숨긴 채 호재성 정보만을 흘려 주가극 띄운 뒤 급락하는 '제2의 삼천당제약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 A씨는 "큰 건이 성사된 것처럼 공시해놓고 정작 세부 내용이 부실해 논란을 자초하는 기업들을 걸러낸다면 시장 전반의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현장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높다. 가장 큰 쟁점은 '영업기밀 유출'과 '공시 위축'이다. 신약 개발 기업들은 임상 일정과 리스크를 지나치게 상세히 공개할 경우 글로벌 경쟁사에 전략이 노출돼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B씨는 "임상 시험은 변수가 워낙 커서 기대 성과를 구체적으로 적었다가 결과가 빗나가면 투자자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규제가 강화될수록 기업들이 오히려 더 보수적으로 공시를 줄이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처럼 임상 전반에 대한 포괄적 경고 문구는 명시하되, 개별 파이프라인의 상세 리스크를 일일이 적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한 공시 확대보다는 허위·과장 정보에 대한 사후 제재를 강화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B씨는 "신약 개발보다 규제 대응이 더 어렵다"며 "중소 바이오 기업일수록 인력과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잦은 제도 변경에 따른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지난 10년간 공시·회계·상장관리 영역에서만 7차례의 굵직한 제도 변화를 겪었다. 한미약품 늑장 공시 사태 이후 의무공시 강화, 연구개발비 회계지침 도입 및 완화 등이 반복되면서 기업들이 신약 개발보다 규제 대응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토로다. 업계 관계자 C씨는 "매번 바뀌는 가이드라인에 맞춰 시스템과 인력을 재배치하는 행정적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투자자 보호라는 취지는 좋지만 현장의 업무 부담을 고려한 세밀하고 일관성 있는 가이드라인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