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한국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한 결제·금융 시스템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축으로 한 보수적 전략을 유지하며, 중국과 유사한 '중앙은행 주도형 모델'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면서 시장 흐름과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써클의 CEO 제레미 알레어는 최근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과 잇따라 협력에 나서며 영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날 두나무와 포괄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데 이어 빗썸과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협력, 코인원과는 USDC 유동성 확대 및 프로모션까지 논의하며 사실상 전방위 확장에 나선 모습이다.
특히 이번 협력은 단순 업무 협업을 넘어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송금·금융 인프라 구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제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자산을 넘어 '차세대 결제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미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디지털 달러 결제망'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내 거래소들도 이에 발맞춰 움직이고 있다. 코인원은 USDC 거래 활성화를 위해 수수료 무료 및 에어드롭 이벤트를 확대하고 있으며, 빗썸 역시 멀티체인 기반 스테이블코인 기술 통합을 검토 중이다. 글로벌 자본과 기술이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결집하는 흐름이다.
반면 국내 금융 정책 방향은 이와 대비된다. 한국은행은 민간 스테이블코인 확산 속에서도 CBDC 중심 전략을 재확인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지난 13일 국회에 제출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서 "비트코인 등 일반적인 가상자산은 일상적 결제수단으로 사용되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며 "은행예금을 기반으로 한 예금토큰이나 법정통화에 가치를 1대1로 연동한 스테이블코인은 미래 통화 생태계에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화폐에 대한 신뢰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중앙은행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CBDC와 이를 토대로 발행되는 예금토큰이 디지털 통화 생태계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을 인정하면서도 '보완재'로 선을 그은 것이다.
또 "현재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 추진 중인 디지털화폐 시스템은 지급결제와 국고금 집행,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지원하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며 CBDC 중심 구조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어 "예금토큰은 규제 준수와 화폐 단일성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며 스테이블코인은 보완적·경쟁적 수단으로 공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따른 리스크도 강조하고 있다. △디페깅 △디지털 뱅크런 △소비자 보호 공백 △금산분리 훼손 △자본 유출 △통화정책 약화 △은행 중개 기능 약화 등 '7대 리스크'를 언급하며, 은행 중심 발행과 강한 규제 체계 필요성을 제시했다.
이 같은 CBDC 중심 접근은 중국의 전략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중심으로 디지털 통화 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CBDC 기반 국제 결제 프로젝트 '엠브릿지(mBridge)'는 중국,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참여하는 크로스보더 결제 플랫폼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지난 1월까지 4000건 이상의 거래를 처리했으며 누적 거래 규모는 약 555억달러(약 82조원)에 달한다. 특히 전체 거래의 약 95%가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되면서 사실상 중국 중심 구조가 형성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단순한 실험 단계를 넘어 자국 통화 인프라를 해외로 확장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디지털 위안화는 2023년 이후 누적 거래액이 800% 이상 급증하며 빠르게 확산됐고, 2025년 말 기준 약 2조4000억달러(약 3564조원) 규모까지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한국의 위치다. 한국 역시 CBDC 중심 전략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처럼 이를 대외 결제 네트워크 확장으로 연결하기보다는 내부 결제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 영역에서는 글로벌 사업자에 주도권을 내줄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중국은 CBDC로 각각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은 양쪽 모두에서 애매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디지털 통화 경쟁에서 '낀 위치'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시장에서 작동하는 인프라인 반면 CBDC는 아직 실험 단계 성격이 강하다"며 "국내가 CBDC 중심 전략에 머물 경우 글로벌 흐름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