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우지수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사업 구조 재편이 주춤하고 있다. 기업 간 입장 차에 더해 중동발 원료 리스크가 더해지면서 논의가 지연되는 모양새다. 대산산단은 통합법인 설립을 앞두고 격려금 지급 등 보상안을 제시하며 속도를 내고 있지만 후속 재편 대상인 여수와 울산산단은 기한을 넘긴 상황이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21시간 마라톤 협상이 합의 없이 종료되며 호르무즈 해협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는 이날 오후 11시부터 이란 항구와 연안 지역을 드나드는 모든 선박을 봉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영향으로 나프타(납사) 등 원료 수급 불안이 장기화하며 당초 상반기 내 마무리하려던 석화업계 산단별 재편 일정이 더욱 불투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업 재편 과정에서 기업간 조율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여수산단 합작사 설립을 추진 중인 LG화학과 GS칼텍스는 자산 가치 평가와 지배 구조 등을 중점으로 논의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산단은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설비 감축 여부가 쟁점이다. 고효율 최신 설비를 감축 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는지를 두고 업체들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 같은 갈등에 원료 수급 불안까지 겹치며 정부의 재편 압박 강도가 다소 완화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석화업계의 지난 분기 실적에 따른 재무 압박도 커지고 있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석유화학 4사인 LG화학·롯데케미칼·금호석유화학·한화솔루션의 합산 예상 매출액과 영업손실은 각각 21조3606억원, 3071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22조0755억원 대비 3.2% 낮은 수치이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원재료 수급 불안이 완화돼도 실적 회복은 당분간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최근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찾고 있지만 지난달 고가에 매입한 나프타 재고가 여전히 공정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이 본격적으로 하락하면 비싼 가격에 사둔 재고로 인해 2분기에 대규모 재고평가손실을 떠안을 위험이 있다.
주요 기업들은 사업 재편을 위한 동력을 확보하려 노력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HD현대케미칼과 합병을 앞두고 대산공장 임직원에게 기본급 기준 총 500% 수준의 특별 격려금 지급과 100% 고용 승계를 약속했다. 조직 안정성을 확보해 9월 통합법인 출범에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다. LG화학은 범용 제품 비중을 조정하기 위해 '비스페놀A(BPA)' 부문 지분 매각을 검토 중이며 최근 삼일회계법인이 참여한 첫 실사를 마치는 등 사업 정비에 힘을 쏟고 있다.
정부도 석화업계 체질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나프타 수출 제한 조치를 통해 기초 원료의 국내 공급을 우선 보장하고 있다. 또한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신규 자금 공급 규모를 26조8000억원까지 확대하고 신용보증기금의 채권담보부증권(P-CBO) 차환 부담을 완화해 기업들의 자금줄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중동 리스크가 고착화할 경우 고부가가치 사업으로의 전환이 해법이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업체 간 이견과 중동 리스크까지 겹친 만큼 석유화학 사업 재편이 당분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석화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상반기 중 사업재편안 제출을 요구하고 있긴 하지만 업체 간 의견이 유의미하게 좁혀지지 않고 전쟁 여파까지 겹쳐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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