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의약품 정책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미국 시장 진출 공식'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3일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한눈에 짚는 트럼프 2기 의약품 정책 변화, 국내 대응 전략은?'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트럼프 정부의 약가 인하 압박과 관세 장벽, 공급망 규제 등 전방위적 변화에 따른 국내 기업의 생존 전략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연사로 나선 서동철 럿커스 뉴저지주립대 겸임교수(중앙대 명예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약가 정책과 행정명령 동향을 분석했다. 서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트럼프 2기에 들어서면서 최혜국(MFN) 행정명령을 통해 MFN 기준 약가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MFN 기준 약가는 국제 최저가 수준에 연동해 미국 내 약가를 인하하는 조치다. 또한 미국 내 의약품 생산 우선 정책과 투자·생산 규제 완화를 통해 미국 내 투자 및 생산을 촉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는 산업·통상·안보 복합 전략으로, 단순한 약가 인하 정책이 아니라 글로벌 제약 가치사슬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전략에 해당한다. 약가, 생산, 연구개발, 통상, 안보 정책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통합되어 설계된 것이다.
서 교수는 "MFN 약가 정책은 한국의 약가 체계, 대미 수출, 글로벌 연구개발(R&D) 투자 전략에 중대한 파급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미국 시장 진출 전략에서 가격 전략, 미국 내 생산·위탁개발생산(CDMO) 연계 여부, R&D 및 파이프라인 배치를 동시에 재설계해야 하는 압력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서 교수는 미국 유통 시장의 80%를 장악한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의 영향력을 지적하며, 트럼프 정부가 이들의 리베이트 카르텔을 우회하기 위해 직거래 플랫폼인 'TrumpRx'를 가동한 점에 주목했다. 그는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유럽이나 한국보다 신약을 미국에서 먼저 출시해 기준 가격을 높게 선점하는 '미국 우선 출시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관세 및 통상 정책의 변화도 주요 변수로 꼽혔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성중 김앤장 변호사는 "미 행정부가 내달부터 의약품 및 원료에 대한 '무역확장법 제232조' 조사에 착수한다"며 "국가 안보를 근거로 한 관세 부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다만 한국산 상품에 대해서는 관세율이 15%를 초과하지 않도록 적용될 것으로 전망하며, 원산지 우회와 품목 분류 등 리스크 관리를 주문했다.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의 기회와 위기 요인도 언급됐다. 중국 기업을 배제하는 '생물보안법' 시행으로 한국 CDMO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나, 동시에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보해야 하는 리쇼어링(본국 회귀)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관세 및 공급망 △약가 및 유통 △법률 및 계약 등 통합적인 전략을 선제적으로 수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 교수는 "장기적으로 혁신 신약 개발을 통한 독보적 기술력 확보만이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과정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약 산업은 한 번 진입하면 수백 년 지속되는 장기 산업"이라며 "한국 제약사는 단순 수출 중심 모델에서 탈피해 미국 현지 생태계에 깊숙이 침투하는 현지화·공급망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