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한미약품이 창사 53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맞이한다. 차기 대표로 금융투자업계를 거친 '재무·투자 전문가'가 등판하면서 그동안 회사의 핵심 전략이었던 '연구개발(R&D) 중심 경영' 기조가 변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황상연 HB인베스트먼트 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를 사내이사 후보로 선임하는 안건을 오는 31일 정기 주주총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주주총회에서 안건이 통과되면 황 후보는 대표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외부 인사가 한미약품 대표를 맡는 것은 1973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회사는 내부 R&D 인력이나 생산·품질 전문가를 중심으로 경영진을 구성해 왔다.
황 후보는 '재무형 CEO'로 분류된다. 서울대 화학과 졸업 후 LG화학 기술연구원에서 경력을 시작했으나, 이후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스 최고투자책임자(CIO), 브레인자산운용 대표 등을 거치며 평생을 금융투자업계에 몸담았다. 종근당홀딩스 대표를 지내며 제약업 경영 경험을 쌓긴 했으나, 이 역시 투자 전략과 자회사 관리에 특화된 지주사 경영이었다.
업계가 주목하는 지점은 한미약품의 경영 색깔 변화다. 물러나는 박재현 대표는 17년간 한미약품에 몸담으며 생산 현장과 R&D를 두루 경험한 인물로, 고(故) 임성기 회장의 'R&D 경영'을 계승해 왔다. 신약 개발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와 글로벌 기술수출 전략을 통해 국내 제약사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R&D 투자를 이어온 기업으로 평가된다.
반면 황 후보는 금융투자 분야 경험이 두드러진 인물이다. 황 후보는 한미약품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최대 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추천으로 선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이끄는 최현만 의장(전 미래에셋증권 회장), 김재교 대표 등도 모두 금융권 출신이다.
지주사와 사업회사 모두 '금융투자 전문가'들이 포진하게 되면서, 향후 한미약품의 의사결정은 기존의 R&D 중심 전략에서 투자와 자본 효율성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강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재무 중심의 의사결정이 강화되면 단기 성과를 중시하는 판단이 늘어날 수 있다"며 "R&D 중심 전략과 균형이 어떻게 맞춰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신약개발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반기 국내 1호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 상업화와 글로벌 임상 결과 발표 등 굵직한 R&D 성과를 앞둔 시점에 사령탑이 교체되면서 개발 현장의 의사결정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제약 산업은 신약 개발에 10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레이스'"라며 "투자 논리가 앞설 경우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장기 프로젝트들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