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정부가 제네릭(복제약) 약가 인하를 핵심으로 한 약가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 제약업계와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약가 인하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업계는 연구개발(R&D) 투자 위축과 산업 생태계 훼손을 우려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업계는 최근 40%대 후반의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정부는 40% 초중반을 논의하고 있어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전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소위원회를 열고 약가제도 개편안을 논의했다. 비공개로 진행될 이날 회의에서 제네릭 의약품 약가 산정률을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에서 '40%대 초중반'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이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지난해 복지부가 건정심에 보고한 개편 방향과 유사한 수준이다. 앞서 복지부는 제네릭과 특허만료 의약품 약가 산정률을 40%대 수준으로 조정하고, 현재 45~50% 수준으로 책정된 기등재 의약품도 단계적으로 인하해 2029년까지 40%대로 낮추는 내용의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보고했다.
제약업계는 인하 폭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상장 제약사의 수익성과 산업 여건을 고려할 때 감내 가능한 제네릭 약가는 오리지널 대비 약 48.2% 수준"이라며 절충안을 제시했다.
업계는 약가 인하가 현실화할 경우 연간 최대 3조6000억원 규모의 매출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영업이익률이 5%대에 머무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약가 인하는 R&D 투자 축소와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약가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약가제도 개편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 토론회'에서는 국내 약품비 지출 구조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이수진·서영석·장종태·김윤 의원과 무상의료 운동본부,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가 공동 주최하고,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 주관했다.
나영균 배재대 보건의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의 약품비 지출은 10여 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해 지난해 27조원에 달했고 국민의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4%)보다 크게 높다"며 "제네릭이 많이 사용되는데도 약값이 떨어지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나 교수에 따르면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제네릭 진입 초기에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0~60%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되지만 이후 다수의 경쟁자가 진입하면서 6개월~1년 이내에 10~20% 수준으로 떨어진다. 반면 국내에서는 제네릭 약가가 오리지널 대비 53.55% 수준에서 사실상 하한선처럼 유지되면서 가격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약가 인하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R&D 투자 및 신약 개발이 위축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형준 원진녹색병원 대표원장은 "위고비를 개발한 글로벌 기업 노보 노디스크가 있는 덴마크도 약제비 비중이 6% 정도"라며 "R&D와 약제비 지출 구조 개혁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짚었다.
제약업계는 제네릭을 비용 증가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에 반발하고 있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제약산업을 건보 재정을 좀먹는 카르텔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제약산업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필수 의약품을 공급하는 산업"이라며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투명한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일본 등이 제네릭 사용을 권장하고 이를 통해 재정 지속성을 유지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회도 약가인하 개편안의 논의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복지부가 약가제도 개편안을 충분한 설명 없이 추진하고 있다며 별도 업무보고를 요구했다. 복지부는 당초 이달 26일 건정심 전체회의에서 약가제도 개편안을 의결한다는 계획이지만, 국회와 업계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일정이 조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