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유가·환율 쇼크에 인하 여력↓…이창용 '마지막 금통위'에 쏠린 눈
  • 이선영 기자
  • 입력: 2026.03.05 00:00 / 수정: 2026.03.05 00:00
4일 밤사이 원·달러 환율 한때 1506원
물가 상방 압력 커졌지만 성장·가계부채 부담에 인상보다 동결 무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셈법을 한층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여파로 국제유가가 치솟고 원·달러 환율이 밤사이 한때 1500원을 돌파하면서 물가 상방 압력은 커졌지만 한은이 곧바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창용 총재 임기가 오는 4월 20일 끝나는 만큼 4월 10일 금융통화위원회가 사실상 마지막 기준금리 결정이 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중동 충격이 커질수록 '동결 장기화'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전날 오전 중동 사태와 환율 급등에 따른 시장 영향을 점검하며 대응 수위를 높였다. 한은은 "밤사이 원·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1500원을 웃돌았지만 과거 위기 때와 달리 달러 유동성은 충분하고, 대외 차입 가산금리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안정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동 정세에 따라 환율과 주요 금융지표의 변동성이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펀더멘털에서 벗어난 과도한 움직임에는 정부와 함께 적기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날에도 한은은 이 총재 주재로 '중동사태 상황점검 TF'를 가동해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환율은 실제로 밤사이 크게 출렁였다. 원·달러 환율은 4일 0시20분께 1500원을 넘어 한때 1506원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1500원 아래로 내려왔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는 1479원에 출발했고, 오전 장중 1477원대에서 거래됐다. 지난 3일 주간 거래 종가도 1466.1원으로, 하루 만에 26.4원 급등한 상태였다. 중동 충격이 원화 약세를 다시 자극하면서 시장의 긴장감이 커진 셈이다.

유가 변수도 만만치 않다. 국제유가는 최근 3거래일 연속 상승세다. 지난 3일(현지시간) 글로벌 벤치마크로 통하는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81.4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4.71% 올랐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74.56달러로 4.67% 상승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와 중동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겹치면서 이번 주 상승률만 10%를 웃돌고 있다. 국제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뛰면 수입물가를 통해 국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는 압력이 커진다. 한은의 인하 여력이 더 좁아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6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고, 당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0%로 제시했다. /이선영 기자
한국은행은 지난달 26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고, 당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0%로 제시했다. /이선영 기자

문제는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은은 지난달 26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고, 당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0%로 제시했다.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3개월 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고, 새로 도입한 6개월 금리 전망에서도 21개 점 가운데 16개가 연 2.50%에 찍히며 장기 동결 신호가 우세했다. 중동발 충격으로 물가와 환율의 부담은 더 커졌지만, 한은의 기본 시계는 여전히 '인상'보다 '동결'에 더 가까운 셈이다.

배경에는 성장과 금융안정의 이중 부담이 있다. 최근 한은은 현재의 완화 사이클 종료를 시사했다고 전하면서도, 원화 약세와 가계부채, 금융시장 불안이 추가 완화는 물론 추가 긴축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시장금리는 이미 오름세를 보이고 있고 중동 리스크가 길어질수록 유가발 기대인플레이션이 금리 하단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다만 가계와 정부의 이자 부담, 부동산·부채 리스크를 감안하면 기준금리를 다시 인상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해석이 많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김 교수는 "환율도 하루 20원 안팎 오른 수준으로 당장 큰 충격으로 보긴 어렵고, 달러 약세 흐름 자체가 완전히 꺾였다고 보긴 이르다"고 말했다. 다만 "전면전으로 번지거나 장기화하고, 해협 문제가 현실화하면 석유류 중심으로 물가가 계속 오를 수 있고 전기·가스 가격 상승 가능성도 커진다"며 "기준금리에 상승 압력은 분명 커지겠지만 성장률이 2% 안팎인 데다 가계부채와 정부부채 부담이 커 기준금리를 올리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기준금리는 못 올려도 시장금리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오는 4월 10일 금통위의 핵심은 '인상 여부'보다 '왜 지금은 못 올리고, 왜 쉽게 못 내리는지'를 한은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설명하느냐에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도 있다. 밤사이 환율이 1500원을 넘겼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당장 기준금리 인상을 단정하긴 어렵지만, 중동 리스크가 길어질수록 한은의 선택지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창용 총재 임기 내 사실상 마지막 금통위는 '인하 재개'의 문을 다시 여는 회의라기보다 동결 기조를 얼마나 더 길게 가져갈지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동발 충격으로 물가와 환율 부담이 커지면서 기준금리 인하 여력은 더 좁아졌지만, 성장과 가계부채 부담을 감안하면 한은이 곧바로 인상 카드를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결국 4월 금통위는 인상보다 동결 기조를 얼마나 길게 이어갈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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