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정부가 제네릭(복제약) 약가를 현행 오리지널 대비 53.55%에서 40%대로 낮추는 약가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 제약업계 전반에 '약가인하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위한 구조 개편이라는 정부 논리와 달리, 업계는 연간 최대 3조6000억원의 매출 감소와 1만4000명 이상의 고용 축소가 불가피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제네릭 중심의 현행 약가 구조를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제네릭 및 특허 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을 단계적으로 40%대로 조정하고, 제네릭 등재 시 부여되던 기본 가산을 폐지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 효율성을 높이고, 절감 재원을 혁신 신약 도입과 연구개발(R&D)에 투입하겠다는 구상이다. 개편안은 이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7월 시행이 유력하다.
정부는 국내 제네릭 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를 웃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2022년 캐나다 약가검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제네릭 약가는 OECD 평균의 2.17배 수준이다. 반면 신약 도입 속도는 더디다. 글로벌 시장 출시 후 1년 이내 국내 도입 비율은 OECD 평균 18%에 비해 한국은 5%에 그쳤다. 2012~2021년 신약 460개의 허가·급여 소요 기간도 평균 46개월로, 독일(11개월), 일본(17개월)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복제약에 재정이 과도하게 묶여 있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고가 신약 접근성 개선도 어렵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그러나 업계는 "재정 논리만 앞선 근시안적 정책"이라고 맞선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 산업 구조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프랑스나 일본처럼 신약 개발 기업과 제네릭 기업이 분리된 구조가 아니라, 국내 다수 제약사가 제네릭 판매 수익을 기반으로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순환형 생태계'라는 주장이다. 제네릭 약가를 일괄적으로 40%대로 낮출 경우 이 같은 '캐시카우(Cash Cow)'가 사라져 R&D 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협회는 산정률 40% 적용 시 연간 최대 3조6000억원의 매출 감소와 1만4000명 이상의 인력 감축 가능성을 거론했다. 특히 중소·중견 제약사의 경우 수익성 악화로 설비 투자 축소와 생산 포기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협회에 따르면 특허가 만료됐음에도 제네릭이 출시되지 않은 품목이 1004개 중 476개(47.4%)에 달한다. 다시 말해 채산성이 더 악화될 경우 시장 진입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보건 안보'도 쟁점이다. 업계는 일본에서 낮은 약가 정책 이후 다품종 소량 생산 구조가 고착화되며 의약품 부족 사태가 장기화된 사례를 든다. 미국 제네릭협회(AAM) 역시 과도한 약가 압박이 공급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단순히 국가필수의약품이나 퇴장방지의약품만 보호하는 방식으로는 제네릭 산업 전반의 기반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가 함께 제시한 '혁신형 제약기업 약가 우대' 방안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업계는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인하 폭이 워낙 큰 만큼 일부 가산으로는 전체 매출 감소를 상쇄하기 어렵다고 본다. 혁신형 기업으로 지정되지 않은 기업이라도 R&D·시설 투자 규모에 따라 가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재정 안정이 곧 환자 접근성 개선으로 이어진다고 보지만, 산업 기반이 무너지면 장기적으로는 환자와 국가 모두가 손해를 볼 수 있다"며 "재정과 산업이 함께 버틸 수 있는 구조가 진짜 지속가능성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제네릭을 줄여 신약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방향성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현장의 충격을 흡수할 안전장치 없이 속도전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며 "이달 건정심 결정이 국내 제약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