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후폭풍] 왕릉 옆 6800가구…녹지 훼손·교통난 우려까지
  • 공미나 기자
  • 입력: 2026.02.02 12:03 / 수정: 2026.02.02 13:35
태릉CC 개발, 2020년 한 차례 무산됐다 부활
주민들 반발…노원구 "고품격·저밀도 단지" 요구
정부가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CC 부지에 68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토교통부
정부가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CC 부지에 68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토교통부

정부가 수도권 도심 내 유휴부지 등을 활용해 청년과 신혼부부 등을 위한 주택 6만가구를 짓겠다는 '1·29 도심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놨다. 입지 경쟁력이 높은 지역들이 포함되며 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다만 실제 주택공급까지 이어지려면 주민 반대, 지자체 협의 등 여러 변수가 남아 있다. 공급 규모가 큰 용산, 노원, 과천 등 3곳의 현실적인 쟁점들을 총 3편에 걸쳐 짚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 | 공미나 기자] 정부가 최근 '1·29 도심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CC 부지에 68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태릉CC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에도 1만 가구 공급 계획이 추진됐지만, 주민 반대로 무산된 전례가 있는 곳이다.

이번 계획이 알려지자 노원구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일 기준 노원구청 홈페이지에는 태릉CC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 민원 글이 다수 게시됐다. 주민들은 "태릉CC 아파트 공급은 노원구의 현실과 주민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일방적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태릉CC 사업 대상지 중 약 13%가 태릉·강릉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과 중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서울시에 따르면 태릉CC 사업 대상지 중 약 13%가 태릉·강릉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과 중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 "종묘는 안 되고 태릉은 된다?" 정부·서울시 갈등

태릉CC 개발을 둘러싼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문화유산이다. 태릉CC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태릉·강릉과 불과 약 100m 거리다. 서울시가 태릉CC 사업 대상지와 세계유산 경계를 분석한 결과, 주택공급 대상지의 약 13%가 문화유산 외곽 경계로부터 100m 이내인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과 중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문제는 종로구 세운4구역 개발과의 형평성 논란으로도 번지고 있다. 국가유산청이 종묘 인근이라는 이유로 세운지구 재개발에 난색을 표하는 것과 달리, 태릉CC에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세계유산 영향 범위에 명백히 포함되는 태릉CC와 달리, 보존지역과 거리가 있는 세운지구 개발은 반대하는 것은 이중잣대"라고 비판했다.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 역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 교통 지옥·녹지 훼손 우려도

주민들은 태릉CC 개발로 이 일대 교통 문제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태릉CC에서 약 2km 떨어진 화랑대역 일대는 동부간선도로, 북부간선도로,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가 맞물리는 상습 정체 구간이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차량 정체가 일상화돼 있다. 실제 지난 1일 오후 방문한 화랑대역 교차로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도로 위 차량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 채 길게 늘어섰다.

노원구 공릉동에 거주하는 40대 A씨는 "하루도 차가 안 막히는 날이 없다"며 "이런 곳에 대규모 아파트를 더 짓겠다는 건 주민 삶의 질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말했다.

녹지 훼손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다. 2023년 발표된 '태릉골프장 일대 부지 보존 및 활용방안 시민여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노원구민의 71%는 태릉골프장 부지를 '태릉 역사·문화·생태공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과거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도 2020년 정부의 태릉CC개발 계획에 강력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당시 두 사람은 "태릉CC는 보존 가치가 있는 땅이니 콘크리트로 채우기보다 녹지공원 등으로 더 많은 시민이 애용하도록 하는게 바람직하다" "구민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준다"며 반대한 바 있다.

태릉CC에서 약 2km 떨어진 화랑대역 일대는 동부간선도로, 북부간선도로,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가 맞물리는 상습 정체 구간이다. /공미나 기자
태릉CC에서 약 2km 떨어진 화랑대역 일대는 동부간선도로, 북부간선도로,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가 맞물리는 상습 정체 구간이다. /공미나 기자

◆ "일자리 아닌 또 아파트?"…들끓는 민심

주민 반발의 밑바탕에는 또 한 번 대규모 공공주택 공급으로 노원구가 끝내 베드타운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지역 경제를 지탱할 기업이나 일자리 유치, 교통 인프라 확충이 선행되지 않은 채 주택만 추가 공급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주민들의 입장이다.

재건축을 가로막은 채 신규 주택공급만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에도 주민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노원구 상계·중계·하계동 일대는 재건축 연한을 넘긴 노후 아파트가 밀집해 있지만, 각종 규제로 정비사업은 수년째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근에 대규모 임대주택 중심의 신규 단지가 들어서면 기존 단지의 재건축 사업성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중계동에 거주하는 60대 B씨는 "재건축은 규제로 묶어두면서 임대 아파트만 대규모로 공급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기존 주거지는 고립되고 노후화만 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는 노원구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원구는 정부 발표 직후 △태강릉 보호의 원칙 하에 고품격·저밀도 주거단지 조성 △지하철 6호선 연장 및 백사터널 건설 등을 포함한 획기적 교통정책 수립 △임대주택 법정 최소 비율 적용 등을 요구했다.

mnm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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