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미국이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해 미국으로 이송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안전자산 선호가 재점화되며 국제 금값이 다시 급등했다. 국내 시중은행들도 품귀로 닫아뒀던 소형 골드바 판매를 일부 재개하며 '실물 수요' 대응에 나섰다. 다만 고점권에서는 미국 고용지표 등 금리 변수와 환율, 공급 정상화 속도에 따라 당분간 변동성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전 9시 10분 기준 한국거래소(KRX) 금 시장에서 순금(99.99%) 1그램 시세는 20만9430원으로 전 거래일 대비 150원(0.07%) 오른 가격을 보였다. 한 돈(3.75g) 가격으로는 78만6525원이다.
반면 국제 금값은 소폭 하락했다. 뉴욕 상품 거래소(COMEX)에서 거래 중심인 2월물 금은 전날보다 33.6달러(0.7%) 하락한 온스당 4462.5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전날까지 지정학적 리스크가 의식되며 상승세를 이어온 가운데 차익 실현매물이 나왔다.
앞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마두로 체포 소식 이후 지정학 불확실성이 커지며 금과 은 등 귀금속이 동반 강세를 보였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현물 금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2.84% 상승한 트로이온스당 4436.90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같은 날 은 현물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76.16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7.94% 급등했다.
정치 이벤트가 안전자산 랠리를 자극한 셈이다. 마두로는 미국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이 납치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고, 베네수엘라 측도 '외세 개입' 프레임으로 맞서며 긴장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후속 제재 움직임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5일 마두로 및 측근과 연관된 스위스 내 자산을 4년간 동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스위스는 잠재적 불법 자산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예방 조치라고 설명했다.
마두로 정권 시기 베네수엘라가 금을 해외로 반출했던 전력도 다시 조명된다. 로이터통신은 스위스 세관 자료를 근거로 2013~2016년 베네수엘라가 113톤(약 52억달러)의 금을 스위스로 운송했다고 보도했다. 제재·자산 동결 같은 후속 조치가 이어질수록 지정학 프리미엄이 더 오래 남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금값이 추가로 치고 올라가려면 '금리 경로'가 관건이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는 자산이어서 통상 실질금리가 내려갈수록 매력도가 커진다. 투자자들은 이번 주 미국 고용지표를 주시하며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금리 인하 기대를 재점검하고 있다. 고점 부담이 큰 만큼 지표 결과에 따라 단기 조정과 재상승이 교차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귀금속 전반의 '과열' 신호도 함께 읽힌다. 안전자산 수요가 금에만 국한되지 않으면서 가격 변동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은 리테일 투자자에겐 부담 요인이다.
대형 투자은행들은 상단을 열어두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올해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약 713만원)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말 금값이 온스당 49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봤고 JP모건도 올해 4분기 금값이 5055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관측했다.
다만 지난해 금값이 60%대 급등하며 기록적 한 해를 보낸 만큼, 올해는 상승 속도가 둔화될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11개 금융업체 전문가들이 제시한 올해 말 금 가격 전망치 평균은 온스당 4610달러다.
국내에선 가격과 함께 물량이 변수다. 금값이 뛸 때마다 소형 골드바는 가공·유통 병목으로 품귀가 잦아 일부 은행이 판매를 중단해 왔다. 실제 신한은행은 지난해 수요 급증과 공급 부족을 이유로 1kg 골드바 판매를 중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새해 들어 공급이 일부 풀리자 은행들은 골드바 판매를 다시 열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소형 골드바 판매를 재개했고, 신한은행은 19일부터 10g, 100g, 1kg 골드바 판매를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KB국민·하나·우리은행도 1분기 중 재개가 예상된다.
실물 수요의 온도는 이미 높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해 골드바 판매액은 6779억7000만원으로, 전년(1654억4000만원) 대비 4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4개 은행(농협 제외)이 공개한 판매량 기준으로도 연간 3745kg이 팔리며 전년 대비 큰 폭으로 늘었다.
실물 품귀가 반복되자 '금 통장(골드뱅킹)'으로 수요가 옮겨가는 흐름도 나타난다. 5일 기준 KB국민·신한·우리 등 국내 일부 시중은행의 골드뱅킹 잔액은 1조9288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권은 고점 구간에선 '체감 수익률' 변수를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제 시세뿐 아니라 원·달러 환율, 은행 스프레드(매매가격 차이), 수수료가 실제 수익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변동성이 큰 국면에서 '추격 매수'가 늘 수 있는 만큼, 투자 목적과 보유 기간을 점검하고 분할 매수·환금성 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국제 금값이 오를 때는 환율과 은행 스프레드, 수수료까지 합쳐져 체감 수익률이 갈린다"며 "고점 구간에선 분할 매수, 환금 계획을 먼저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골드바는 실물이라 공급이 바로 따라오지 못해 품귀가 반복된다"며 "판매가 재개돼도 물량이 제한적일 수 있어 가격 급등 구간 '추격 매수'는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