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황지향 기자] 자동차 산업이 또 한 번의 변곡점에 서 있다. 전동화 전환이 일정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경쟁의 무게중심은 이제 피지컬 AI(물리적 AI)로 옮겨가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소프트웨어 영역을 넘어 실제 물리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하며 행동까지 수행하는 단계로 진입하면서 완성차 업계는 차량은 물론 제조 현장과 로보틱스를 아우르는 구조적 전환에 나서고 있다. 새해 초 열리는 CES 2026을 기점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AI 로보틱스와 소프트웨어중심공장(SDF)를 앞세워 미래 경쟁력 재편에 속도를 내는 배경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6에서 SDV(소프트웨어중심차)와 자율주행, 로보틱스를 아우르는 통합 기술 비전을 공개한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를 비롯해 현대모비스, 현대위아까지 주요 계열사가 총출동해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제시할 예정이다.
현대차·기아는 SDV 전환과 자율주행 기술을 중심으로 차량과 서비스를 연결하는 차세대 모빌리티 생태계를 강조한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진화하는 자동차의 미래상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차량 자체의 성능 경쟁을 넘어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결합된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이번 CES에서 현대차그룹은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 부스를 꾸리고 AI 로보틱스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룹 산하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차세대 전동식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처음으로 실물 시연되며, 4족보행 로봇 스팟과 이동형 로봇 플랫폼 모베드를 활용한 기술 프레젠테이션도 진행된다.
오는 5일 열리는 CES 2026 미디어데이에서는 'AI 로보틱스, 실험실을 넘어 삶으로'를 테마로 AI 로보틱스 핵심 전략을 제시한다. 미디어데이 현장에서는 △최첨단 AI 로보틱스 기술 실증 △인간-로봇 협력 관계 구축 방안 △그룹사 역량을 결집해 조성하는 AI 로보틱스 생태계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를 직접 선보이며 AI 로보틱스 전략의 주요 사례도 선보인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은 SDF를 기반으로 로봇 기술을 검증하고 이를 실제 제조 현장에 적용해 AI 로보틱스 생태계를 확장하는 구상을 제시할 예정이다.
완성차 업계 전반에서 제조 경쟁력의 기준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기존의 공정 자동화나 로봇 도입을 넘어 AI를 활용한 품질 관리와 생산 계획 수립, 디지털 트윈 기반 공장 운영이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공장을 운영하는 SDF는 생산 과정 전반의 유연성과 대응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AI의 역할 역시 확대되고 있다. 생산 효율을 높이는 도구를 넘어 수요 변동과 공급망 불확실성을 사전에 예측하고 다차종·소량 생산 체계에 대응하는 전략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기아는 2022년부터 스마트공장 전환을 추진하며 무인화를 목표로 한 공장이 아니라 사람과 로봇, AI와 작업자의 경험이 결합된 생산 모델을 제시해 왔다.
이 같은 구상은 실제 생산 거점에도 적용되고 있다. 2023년 준공된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축적된 제조·운영 데이터는 울산 전기차 신공장 등 국내 생산 시설로 확산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외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AI 제조 기술을 고도화하는 한편 관련 조직과 인력에 대한 권한도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환경은 녹록지 않다. 비용 부담과 수익성 압박이 커지면서 폭스바겐은 독일 드레스덴 공장의 생산 중단과 폐쇄를 결정했고, 추가 구조조정도 검토 중이다. 제너럴 모터스와 닛산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 역시 공장 폐쇄와 생산 중단을 이어가며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생산 효율을 정밀하게 관리하고 시장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공장은 새로운 경쟁력의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삼정KPMG는 2026년 자동차 산업이 제한적인 성장 국면에 머무는 가운데 제조 효율성과 운영 역량이 기업 성패를 가를 핵심 요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로봇 도입 속도에서는 국가 간 격차는 뚜렷하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새로 설치된 산업용 로봇은 17만 대로 전 세계 신규 설치 물량의 절반을 넘는 57.6%를 차지했다. 중국의 공장용 로봇 보유 대수는 2023년 기준 180만 대에 달해 미국의 4배 수준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에서도 중국은 30%의 점유율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25%)과 일본(10%)이 뒤를 잇고 있다.
피지컬 AI는 센서를 통해 현실 세계를 인지하고 물리적 제약과 환경 조건을 고려해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자율주행을 비롯해 로보틱스, 제조 자동화, 물류 시스템 등으로 적용 범위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전동화가 하드웨어 중심의 전환이었다면 피지컬 AI는 자동차 산업의 '두뇌'를 바꾸는 변화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전동화 이후 자동차 산업의 경쟁 축은 피지컬 AI와 제조 역량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스마트팩토리를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완성차 업체 간 격차가 구조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AI 로보틱스와 소프트웨어중심팩토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생존을 좌우하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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