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올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경제계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 등 규제 완화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2·3조) 등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해에는 세심한 경영전략 수립이 요구되는 모습이다.
31일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내용으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내년 1월 국회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1월 자사주를 취득한 날부터 1년 내 소각하도록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주주 환원 확대 등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다만 기업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법적으로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 우호 세력에게 매각해 방어 장치로 활용된 사례가 있다.
오너 일가가 경영하는 기업은 '승계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경우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자사주를 10% 이상 보유한 104개 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62.5%가 의무 소각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내년 3월에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노란봉투법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인 9월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서 입법 절차가 마무리됐다. 핵심은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 확대, 파업 노동자에 기업 손해배상 청구 제한이다.
하청노동자 교섭 요구가 가능해지면서 기업은 세심한 '노무 전략'이 필요해진 셈이다. 다만 교섭 단위 분리와 창구 단일화 등을 놓고 여러 의견이 나오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묘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최근 현대제철과 한화오션 하청노동조합이 원청 회사를 대상으로 교섭에 대응하라고 낸 조정 사건에서 사측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렸다. 아직 시행되지 않은 노란봉투법 취지가 담긴 셈이다.
경제계와 노동계는 전면 충돌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시행이 2개월 남아 있고 시행령 입법 예고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하청 노조가 원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쟁의 조정을 인정한 것"이라며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를 사실상 형해화시킨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부가 올해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한 만큼 향후에는 현장 안전 강화가 경영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와 철강, 조선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산업재해 발생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예방적 행보를 보일 전망이다.

규제 완화 기조에는 반기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지난 9월에 1차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30일 2차 방안을 발표했다. 1차 방안은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정하고, 선의의 사업주를 보호하기 위해 최저임금 관련 양벌규정을 개선한 내용 등이 담겼다.
형법상 배임죄는 업무상 임무를 위배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손해를 가한 경우다. 다만 고의로 회사에 손해를 끼칠 의도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간 많은 기업 총수가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지난 30일 발표된 2차 방안에는 불공정거래행위 등 중대 위법행위는 형사처벌보다는 높은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경영인이나 기업이 재판에 넘겨지면 사법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경제계로서는 반길만한 내용이다.
올해 유난히 경제계에 미국 관세 등 외부 위기가 몰려온 상황에서 민관이 협력한 사례도 있었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 조선업계는 지렛대 역할을 했고, 완성차 업계는 협상 결과에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재계 총수에게 "자주 만나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기간에도 민관 협력이 두드러지기도 했다. 방산 수출 분야에서도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무대에 등판하는 등 원팀 기조가 진해지고 있다. 내년 초에는 4대 그룹 총수 등이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이 대통령 방중에 동행할 예정이다.
정부가 구조 전환에 발맞추는 점도 반기는 부분이다. 한국경제인협회를 비롯한 경제단체는 신년사로 내년을 AI(인공지능) 등에 따른 새로운 기술문명 이동 전환점이라고 봤다. 실제 올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방한 계기로 기업은 AX(인공지능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더 이상 뒤처져서는 안 되는 자율주행 분야에서 정부와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초 2030 모빌리티 혁신성장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로드맵에는 자율주행과 UAM(도심항공교통) 등 분야 중장기 정책 방향이 담길 전망이다.
글로벌 탈탄소 흐름에 정부가 기민하게 대응하는 점을 활용해 체질 개선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철강업계는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를 위해 잰걸음을 걷고 있다. 정부는 수소 가격을 낮추겠다며 산업계가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주문한 상태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부 정책에 비용 인상이나 부작용을 언급하면서도 1년 차이기도 하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지켜보자는 것 같다"라며 "내년부터 정부에 대한 기업 평가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부터 정부 색깔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는 데 기업도 정부와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모색할 것 같다. 정책이 세게 느껴지는 부분은 불만이 있을 것 같다. 선의는 이해하지만, 정부도 기업이 무엇을 원하는지 현실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는 해가 돼야 한다"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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