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우지수 기자]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코엑스는 1000여 명이 넘는 인파가 대한민국 인공지능(AI)의 현재와 미래를 확인하려는 열기로 뜨거웠다. 3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발표회' 현장이다.
이날 행사는 전문가들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대학생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세대를 불문한 방문객들이 부스를 가득 메웠다. 특히 한 부스에서는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이 미리 준비해 온 질문이 적힌 노트를 직원에게 건네며 "AI에게 이 질문을 대신 물어봐 달라"고 부탁하는 모습도 보였다.
본 행사에 앞서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5개 정예팀의 노고를 치하하며 이번 프로젝트가 갖는 국가적 무게감을 역설했다. 배 부총리는 개회사에서 "4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에도 고무적인 성과들이 나왔다"며 "이번 도전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모두가 승자이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정부가 함께해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며 "그 도약의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이며, 이번 사업의 결과에 따라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글로벌 빅테크들의 잇따른 투자 요청을 언급하며 "한국이 아시아·태평양의 AI 수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사업에 참여하는 5개 정예팀(SK텔레콤, 네이버클라우드, NC AI, 업스테이지, LG AI연구원)은 각기 다른 전략으로 한국형 AI의 해법을 제시했다.
정석근 SK텔레콤 AI CIC장은 발표에서 자사 모델을 e스포츠의 전설 '페이커'에 비유하며 국가대표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A.X K1은 국내 최초의 500B(5000억개) 매개변수를 가진 초거대 모델"이라며 "미국과 중국만이 보유한 거대 모델 리그에 한국도 당당히 진입했다"고 선언했다.
발표 말미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영상 메시지를 통해 힘을 보탰다. 최 회장은 "AI 주권은 누가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며 "단순히 남의 기술을 빌려 쓰는 것을 넘어, 우리가 구축한 인프라 위에 우리만의 독자적인 기술 뿌리를 내릴 때 진정한 AI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SKT 부스에서는 관람객들에게 '붕어빵' 모양의 보조배터리를 나눠주며 친숙함을 강조했고, 시연에서는 복잡한 수능 문제를 단계별로 추론하는 '사고 모드'를 선보였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성낙호 하이퍼스케일 AI 기술총괄이 나서 '소버린 AI'와 '효율성'을 강조했다. 성 총괄은 "텍스트만 학습한 AI는 세상의 반쪽만 아는 것"이라며 "보고 듣고 말하는 '옴니모달(Omni-modal)'이야말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네이버 부스에서는 기하학 도형이 포함된 수학 문제를 별도의 문자 변환(OCR) 없이 이미지 그대로 이해해 4초 만에 풀어내는 '하이퍼클로바X 시드 32B 싱크'가 시연됐다. 농경지 시나리오와 함께 '감귤'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는 기술의 실생활 적용 가능성을 보여줬다.

범용성보다 특정 산업과 기능을 강조하고 나선 전략도 돋보였다. NC AI는 게임 기술을 국방과 제조업으로 확장했다. '국방 에이전트' 시연에서 AI는 전장 사진 한 장을 보고 "산악 지형에서 전차 부대가 화력 훈련 중"이라며 상황을 정교하게 분석해 냈다. 업스테이지는 '거품 뺀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김성훈 대표는 타사 모델과의 성능 비교를 통해 기술적 우위를 자신했고 부스에서는 환각 없이 문서를 처리하는 '다큐먼트 AI'로 B2B 수요를 공략했다.
LG AI연구원은 이날 'K-엑사원(K-EXAONE)'을 공개하며 글로벌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뽐냈다. K-엑사원은 매개변수 2360억개(236B) 규모의 프런티어급 모델로, 개발 착수 5개월 만에 글로벌 최신 모델 성능을 100% 이상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짧은 시연 시간으로 인한 아쉬움도 나왔다. 일부 관람객 사이에서 대부분의 시연이 1회성 질문과 답변(Q&A) 기능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실제 업무 환경에서의 장기적인 안정성이나 할루시네이션(환각) 발생 여부 등을 면밀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기정통부는 내달 15일까지 1차 단계평가를 완료한다. 이번 평가에서 한 팀이 탈락하고 향후 6개월마다 평가해 최종 1~2개 팀만이 '국가대표 AI' 간판을 달게 된다. 이날 5개 팀이 공개한 성과는 향후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산업계 확산 가능성을 중심으로 평가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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