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세종=박병립 기자] 국세청이 가격담합 등 불공정 행위로 물가불안을 부추긴 시장 교란행위자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조사 대상은 31개 업체로 이들이 탈루혐의 금액은 1조원으로 국세청은 보고 있다.
국세청은 민생경제를 어렵게 만들면서 정당한 납세의무는 회피하고 부당한 이득을 챙겨 온 시장 교란행위 탈세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전격 실시한다고 23일 밝혔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번 조사대상은 △시장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사익을 취한 가격담합 등 독·과점 기업(7개) △관세인하 혜택은 누리면서, 부당이득을 챙긴 할당관세 편법이용 수입기업 (4개) △소비자 주권을 침해하는 숨은 가격인상 등 슈링크플레이션 프랜차이즈(9개) △법인자금으로 고가 해외자산 취득 등 환율 불안을 자극한 외환 부당유출 기업 (11개) 등 31곳이다.
가격 담합 등을 통해 수요와 공급에 따른 정상 가격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가격을 부풀린 독·과점 기업들이 대거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조사대상 업체들은 사다리 타기, 제비뽑기 등을 통해 낙찰 순번을 정해 '나눠먹기식 수주'를 하면서 들러리 업체에게는 입찰 포기의 반대급부로 계약금액의 10%에 상당하는 금액을 담합사례금으로 지급했다.
가구 제조업체 A사는 여러 회사들과 사전에 가격을 합의해 입찰 담합을 수십 차례나 실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A사는 담합 사례금을 지급·수령하는 과정에서 실물 거래 없이 들러리 업체로부터 거짓 매입세금계산서를 받거나, 스스로 들러리 업체가 돼 거짓 매출세금계산서 교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업체는 가구 자재 매입 과정에서 특수관계법인을 거래단계에 끼워넣어 고가에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분배하기도 했다. 동남아 소재 페이퍼컴퍼니에 자금을 대여하고 회수하지 않는 방식으로 법인 자금을 부당하게 해외 유출한 혐의도 포착됐다. 업무와 무관한 10억원대의 고가 골프 회원권을 법인 자금으로 취득하고 사주 일가가 사적으로 사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치킨, 빵 등을 판매하면서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은근슬쩍 중량만 줄이는 '용량꼼수'로 이익을 챙긴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조사 대상 업체들은 이런 '슈링크플레이션'을 통해 소비자가 인지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제품의 실질가격을 높이면서도 부당한 이익을 챙겨온 것으로 들러났다.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인 C사는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음식 중량을 줄이는 행위로 발생한 이익을 사주 일가가 운영 중인 계열법인의 광고선전비를 지원하는데 사용했다. 또 임원에게 인건비를 과다 지급하고 사주가 이 중 일부를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법인 자금을 유출하기도 했다.
다른 업체들은 원재료·부재료 판매 업체와 직거래가 가능함에도 계열 법인을 거래 단계 중간에 끼워넣어 시가 대비 고가로 매입하는 수법도 동원했다. 사주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가맹점을 인수하면서 권리금을 과다하게 지급하기도 했다. 이렇게 불투명한 유통 과정 속에서 부풀려진 원가는 결국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안덕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번 세무조사를 통해 물가·환율 상방 압력을 유발하는 등 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면서 정상적인 경제 활동 범위를 넘어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시장 교란행위 탈세자에 대해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또 "세무조사 과정에서 조세범처벌법상 장부·기록 파기 등 증거인멸 행위나 재산 은닉 등 범칙 행위가 확인될 경우 수사기관에 고발해 징역·벌금 등 위법행위에 상응하는 형사처벌로 이어지도록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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