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김원장 언론인] 한 빅테크기업이 거대한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봤더니 박사급 전문가 1만여 명이 앉아서 일일이 우리가 묻는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면, 그게 혁신일까.
쿠팡은 유통시장의 ‘게임 체인저’라는 평가를 받았다. 소비자가 주문하기 전에 미리 물량을 깔아놓는다. 이른바 ‘풀필먼트(Fulfillment)’전략이다. 새벽배송·로켓배송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있다, 주문 즉시 택배가 출발한다. [주문→조달→배송]의 유통시장을 [조달→즉시배송]으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배송기사를 부르지 않고 직접 직원으로 고용했다. 차량과 배달 노선, 근무시간의 직접 통제가 가능해졌다. 이렇게 안정적인 신속 배달 구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과정의 코어시스템이 기술이 아닌 ‘사람’이다. 주중 1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 야간 9시간 가까운 노동시간이 시스템을 채운다. 혹한기나 새벽에도 쿠팡은 배송 약속을 지킨다. 사실은 쿠팡의 시스템이 지키는 게 아니고, 쿠팡 노동자가 잠을 이겨가며 약속을 지킨다. ‘프레시백을 어쩜 그렇게 잘 챙겨갈까?’ 시스템이 아닌 직원들이 잘 챙겨가는 것이다. 이유는 프레시백 회수율이 떨어지면 직원 인사에 반영이 된다.
그렇게 거대한 투자로 거대한 물류센터를 만들어 거대한 인력을 고용한 뒤 거대한 노동을 투입하자 중소형 경쟁업체들이 고사하면서 시장을 확장하는 구조다. 그렇게 지난해 매출이 40조 원을 넘었다. 그럼 쿠팡에 입점 업체들은 더 나은 보상을 받을까? 중소기업중앙회가 쿠팡에서 제품을 파는 162개 입점 업체에 물었더니 매출의 20.6%를 쿠팡에 내고 있었다. 다른 온라인 쇼핑몰보다 1.8%포인트나 높았다. 입점 업체 중 34.0%는 제품을 팔고 정산까지 51일 이상 걸린 적이 있다고 답했다. 네이버쇼핑은 4%, 무신사를 이용하는 입점 업체는 그런 사례가 0건 이였다. 혁신이란 시스템으로 입점 업체의 이익을 높여주고 정산을 앞당겨 주는 것이다.
그렇게 당장 현금이 필요한 입점 업체들을 위해 쿠팡은 대출도 해준다. 그런데 최고 이자율이 18.9%다. 그렇게 지난해 쿠팡은 1.7%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쿠팡은 혹시 소비자들의 비용을 입점 업체와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는 혁신을 만든 게 아닐까.
쿠팡의 성공에는 유독 제도와 인프라 요소가 많이 들어간다. 로켓배송은 한국만의 집약적인 도시 구조 덕분에 가능하다. 게다가 아파트 비중이 워낙 높다. 배달 효율성이 크게 높아진다. 결국 새벽 배송은 기술보다 지리적 보너스가 핵심이다. 우리는 특히 유럽처럼 야간 노동이나 영업에 대한 규제가 약하다.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이나, ‘현관 비밀번호’까지 알려주는 아파트 문화가 있었으니까 가능한 서비스다. 선진국은 야간에는 노동과 소음 등에 대한 수많은 규제가 있다. 영국은 심지어 별자리를 바라보기 위해 야간 조명을 규제하거나 밤 11시 이후에는 조명을 꺼야 하는 ‘다크 스카이 리저브 Dark Sky Reserve’라는 제도가 있다.
게다가 자영업 비중이 높은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무한 경쟁에서 이탈한 30~40대가 사실상 무한 공급된다. 이들은 혹독한 노동을 감내할 각오가 돼 있고, 그렇게 쿠팡의 새벽배송·로켓배송의 인력이 충원된다. 안전 등 근무 여건을 까다롭게 따지는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이런 노동 공급 자체가 쉽지 않다.
쿠팡의 또다른 혁신(?)은 지배구조에 있다. 미국인 김범석 의장은 8% 조금 넘는 지분을 갖고 있지만 차등의결권을 이용해 70%가 넘는 지배권을 행사한다. 누가 봐도 ‘오너’이자 ‘최고 의사 결정권자’다. 쿠팡은 지난 2021년 자산 5조 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그럼 총수(회장님)를 지정하고 총수 일가의 내부 거래를 감시해야 한다. 총수의 자금 거래 내역 등을 공시해야 한다. 김범석 의장은 그런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지정이 안됐고, 그래서 쿠팡은 대기업인데 사람이 아닌 법인이 총수로 지명돼 있다.
총수가 없으니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감시할 대상이 없다. 러시아에 ‘가스프롬’이나 ‘로스네프트’ 같은 거대 국영기업은,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올리가리히(러시아의 특권층)가 지배한다. 권한은 있는데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다. 이같은 구조 덕분에 매출의 88%를 한국에서 올리는 미국 기업에서 한국인 3300만여 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됐는데, 기업의 실질적인 대표는 아직도 대국민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쿠팡은 진짜 혁신 기업일까. 쿠팡의 혁신은 기술보다는 대부분 사람에서 온다. 그래서 쿠팡의 진짜 경쟁자는 ‘네이버쇼핑’이나 ‘아마존’이 아니라 ‘근로 규제’나 ‘택배 근로자의 임금 상승’이라는 말이 나온다.
국회 과기정통위는 오는 17일 쿠팡 청문회를 위해 김범석 의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김 의장은 다른 일정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했다. 그는 여러 차례 국회 출석을 거부했다. 지난 1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택배 노동자의 근로 조건 관련 청문회를 했을 때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참여를 이유로 불참했다. 10년 전쯤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됐을 때는 농구를 하다 발목을 다쳤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우리 국회의 대응을 지켜볼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