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지주 이사회에 IT·소비자 전문가 넣어라"…사외이사회 판도 바뀔까
  • 이선영 기자
  • 입력: 2025.12.11 10:12 / 수정: 2025.12.11 10:12
IT·보안·금융소비자 분야 사외이사 최소 1인 의무화 추진
지배구조 TF 이달 가동…기관주주 추천·임기 차등화 등도 검토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0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국회=박헌우 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0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국회=박헌우 기자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 이사회에 정보기술(IT)·보안과 금융소비자 보호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를 최소 1명 이상 포함하도록 하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불완전판매와 전산사고, 개인정보 유출 등의 책임을 단순 영업현장이 아닌 그룹 차원의 거버넌스 문제로 규정하면서 지배구조를 손보겠다는 첫 칼날을 '이사회 구성'에 겨눈 셈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전날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KB·신한·하나·우리·NH농협·iM·BNK·JB 등 8개 금융지주 회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지주 이사회에 IT·보안 및 금융소비자 분야의 대표성 있는 사외이사 1인 이상을 포함하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주회사는 투명한 승계 시스템과 독립적인 이사들에 의한 견제 기능을 확보할 때 주주와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며 "경영승계 요건과 절차는 명확·투명해야 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이달 중 학계·업계 등이 참여하는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겠다고 예고했다. TF를 통해 △IT·보안·금융소비자 전문 사외이사 최소 1인 포함 △사외이사 추천 경로 다양화 △사외이사 임기 차등화 등 방안을 논의해 구체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이 원장은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의 주주 추천 등 사외이사 추천 경로를 다양화하겠다"며 "사외이사 임기 차등화 등을 통해 독립성을 갖춘 후보추천위원회 구성과 공정한 운영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기존처럼 관료·법조·학계 출신에 편중된 이사회 구조로는 IT 보안, 디지털 전환, 소비자 보호와 같은 핵심 이슈에 대한 전문적 견제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잇따른 사고에 '이사회 책임' 정조준…관료·법조 편중 이사회 구성 바뀔까

홍콩H지수 연계 파생결합증권(ELS) 불완전판매, 카카오 계열·카드사·가상자산 플랫폼을 둘러싼 개인정보 유출·해킹 사고 등으로 소비자 피해가 반복되자, 금감원이 그 책임의 무게를 금융지주 이사회 쪽으로 옮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이 원장은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욕구가 과도하게 작동하고, 이사회를 참호처럼 구축하는 사례가 있다"면서 지배구조 전반에 '경고장'을 날린 바 있다.

IT·보안 투자를 비용으로만 보던 인식도 도마에 올랐다. 앞서 이 원장은 취임 첫 간담회에서 "국내 금융사의 보안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형편없다. 고객 정보 유출 시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며 자본시장법 수준의 제재 체계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그는 "검사 시 IT 거버넌스와 보안 체계의 적정성을 중점 점검하고, 보안 취약점 분석·평가 등 사전 예방적 보안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지주 이사회는 그동안 관료·법조·학계 출신 사외이사가 다수를 차지해왔다. 감독당국과의 소통, 규제 이해, 대외 신인도 측면에서는 이점이 있지만, 디지털 금융 환경에서 핵심 리스크로 떠오른 IT·보안·소비자 보호 분야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금감원이 '전문사외이사 1인 이상 의무화' 방향을 명확히 한 만큼, 내년 이후부터는 금융지주들이 이사회 구성 계획에 IT·정보보호 최고책임자(CISO) 출신, 빅테크·핀테크 경영진, 금융소비자단체·옴부즈만 경험자 등 새로운 풀을 본격적으로 물색해야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동시에 사외이사 추천 주체를 기관투자가·연기금 등 시장 참여자로 넓히고, 임기를 차등화해 '참호 이사회' 구축을 막으려는 시도도 병행될 전망이다.

금감원은 포용금융 종합평가체계와 '상생금융지수'를 도입해 서민·소상공인 지원, 사회공헌, 중소기업과의 상생 협력 등도 평가하겠다는 방침이다. 서민·소상공인 지원, 중소기업 상생, 사회공헌 등이 주요 평가 축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감독당국의 지배구조 개입이 지나치게 구체적이면 이사회 자율성과 경영 자율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더팩트 DB
금융권 안팎에서는 감독당국의 지배구조 개입이 지나치게 구체적이면 이사회 자율성과 경영 자율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더팩트 DB

다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감독당국의 지배구조 개입이 지나치게 구체적이면 이사회 자율성과 경영 자율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특히 특정 분야 전문가를 '의무'로 두는 방식이 자칫 형식적 요건 채우기에 그치거나, 새로운 형태의 전관·낙하산 통로로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 설계와 감독 기준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원장이 말한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 주주의 사외이사 추천'은 시장에선 사실상 국민연금이나 시민·소비자단체 같은 공적 투자자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민연금이 상장사 사외이사 인선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 원장이 참여연대 재직 시절부터 꾸준히 제기해온 의제이기도 하다. 이미 국내 금융권이 ‘관치’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만큼 국민연금까지 사외이사 추천 창구로 나설 경우 정부가 연금을 우회 통로로 활용해 금융지주 지배구조 전반에 영향력을 넓히려 한다는 비판이 한층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사회에 IT·보안, 금융소비자 전문가를 반드시 한 명 이상 넣으라는 주문 자체는 글로벌 흐름과도 맞는다"며 "다만 '전문가 한 자리 채웠다'는 체크리스트용 요건이 아니라, 실제로 경영진을 상대로 보안 투자·소비자 보호 이슈를 집요하게 묻고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느 분야 출신을 꼭 이사회에 넣으라고까지 정해주는 건 자칫 지배구조 자율성 침해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며 "형식적 요건 맞추다가 또 다른 전관·낙하산 통로로 악용되지 않도록, 인선 기준과 사후 평가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이번 지배구조 개편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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