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황준익 기자] 정비사업 조합에서 건설사의 하이엔드 브랜드를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고급 아파트 이미지를 통해 가치를 올리겠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건설사들은 희소성과 상품성을 이유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다.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2구역 재개발 조합은 최근 시공사인 DL이앤씨에 하이엔드 브랜드 '아크로' 적용을 요구했지만 불가 통보를 받았다.
상대원2구역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어제(9일) DL이앤씨로부터 아크로 브랜드 적용이 안 된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말했다.
상대원2구역은 상대원동 3910번지 일원을 재개발해 최고 29층, 총 43개 동, 4885가구의 대단지 아파트로 탈바꿈한다. 조합은 2015년 10월 DL이앤씨를 시공사로 선정했다.
조합은 성남 첫 아크로 적용을 통해 아파트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었다. 2023년에도 한 차례 아크로 적용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DL이앤씨는 조합에 아크로 적용을 위해선 공용시설 면적 추가 확보, 지하주차대수 확대, 커뮤니티 시설(수영장, 세대창고, 레슨룸 등) 추가, 마감재 수준 상승 등이 필요하다고 알렸다. 이에 조합은 주차대수 확대, 스카이라운지, 실내수영장 등을 추가해 지난 10월 사업시행계획(변경)인가를 받았다.
현재 조합은 내년 상반기 착공을 앞두고 DL이앤씨와 공사비를 협상 중이다. 조합은 공사비를 협의하면서 아크로 적용을 요청했고 DL이앤씨도 요청에 따라 지난달부터 내부 검토를 진행했다. 하지만 결국 아크로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아크로 브랜드 적용 기준 강화 △설계변경에 따른 착공지연 △공사량 증가에 따른 공사비 증가 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상대원2구역은 대단지이긴 하지만 구성남에 비역세권 등 입지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경기도 첫 아크로인 '아크로베스티뉴'는 평촌이라는 이미지와 범계역 역세권이라는 입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하면 아파트 가치가 오를 수 있지만 공사비도 뛴다. 이는 조합원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시공사 선정 당시 일반 브랜드로 적용하기로 했다가 하이엔드 브랜드로 바뀌게 되면 설계도 변경해야 한다.
건설사들도 무분별한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현대건설은 최고 의사결정권자로 구성된 '브랜드위원회'를 통해 사업지의 적정성을 심의, 통과하는 경우에만 '디에이치' 브랜드를 적용하고 있다. 희소성과 예술적인 가치를 반영하는 심미성, 프라이빗 서비스 등의 편의성을 모두 제공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을 추진하면 기준을 맞추기 위한 공용시설 면적 추가, 커뮤니티 시설·마감재 변경 등이 수반돼 공사비가 상승한다"며 "추가분담금이 올라가고 인가를 받은 상황에서는 브랜드 변경시 사업이 더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서울 강남권 등 제한된 입지에서 적용되던 하이엔드 브랜드가 수도권, 지방 등 전국 곳곳으로 확대되면서 브랜드 희소성이 퇴색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하지 않으면 수주가 안 되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이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애초 건설사들이 하이엔드 브랜드를 잇달아 출시할 당시 이 같은 우려가 있었다"며 "희소성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수익성을 가져가느냐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부동산 플랫폼 다방이 최근 전국 10~50대 남녀 1만7100명을 대상으로 2025 하이엔드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DL이앤씨의 아크로가 5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아크로는 전체 응답의 42.3%가 가장 선호하는 아파트 브랜드로 선택됐다. 이어 현대건설 '디에이치'(24.6%), 대우건설 '푸르지오 써밋'(17.4%), 롯데건설 '르엘'(15.7%) 등의 순으로 선호도가 높았다.
plusik@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