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황지향 기자] 테슬라가 전기차 판매 급증에 이어 감독형 완전자율주행(FSD)와 위성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까지 연달아 국내에 도입하면서 한국 모빌리티 산업 전반을 흔들고 있다. 자율주행·통신·전기차 판매를 아우르는 이른바 '3중 공세'가 현실화하자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한 국내 업계는 기술 경쟁 체계 재정비에 나서는 분위기다.
10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테슬라의 올해 11월 누적 국내 신차등록 대수는 5만5594대로 전년(2만8498대) 대비 95.1% 급증했다. 수입차 판매 1, 2위를 다투는 BMW(7만540대)와 메르세데스-벤츠(6만260대)가 여전히 앞서 있지만 격차는 크게 줄었다. 11월 한 달 판매량만 보면 테슬라는 7632대로 전년 동월(3618대)보다 111.0% 증가하며 수입차 브랜드 중 1위를 기록했다.
판매를 이끈 모델은 '모델Y'다. 11월 한 달 판매 6180대로 전기차 전체 1위를 기록했으며, 전체 차종 기준으로도 기아 쏘렌토(9603대)의 뒤를 이었다. 올해 누적 전기차 판매에서도 기아(5만2176대)와 현대차(4만205대)를 모두 제치며 한국 시장 전기차 1위 브랜드로 올라섰다.
이 같은 판매 공세에 더해 테슬라는 지난달 23일 국내에 감독형 FSD를 전격 출시하며 기술 우위 경쟁까지 본격화했다. 미국, 캐나다, 중국 등에 이어 7번째 도입국이다. 운전자가 핸들을 잡지 않고 전방 주시만으로 주행할 수 있는 수준의 고도화된 기능을 갖춘 점이 특징이다. 출시 직후 서울 도심 주행 영상 등이 SNS와 유튜브에서 확산하면서 성능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올라가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는 미국 자동차 안전 기준(FMVSS)을 충족한 미국산 차량에 대해 한국 안전 기준 일부를 면제하는 조항이 있다. 연간 5만대였던 적용 상한도 폐지돼 있어 테슬라는 해당 규정에 따라 미국 사양 기능을 비교적 빠르게 국내 차량에 적용할 수 있다.

FSD 도입은 국내 자동차 업계에도 즉시 파장을 미쳤다.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기술 총괄이던 송창현 AVP본부 본부장이 최근 사임하면서 테슬라발 압력 속 조직 쇄신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현대차그룹은 조만간 후임을 선임하고 자율주행 개발 축을 미국 보스턴의 합작법인 모셔널로 옮길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44.2%), 기아(23.8%), 현대모비스(17%)가 85%의 지분을 갖고 있어 사실상 그룹 자회사로 분류되는 곳이다.
이와 함께 엔비디아와의 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 10월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계기로 현대차그룹에 차세대 그래픽 처리장치(GPU) 블랙웰(GB200) 5만장을 공급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가 FSD 학습에 활용한 GPU H100와 비교하면 규모는 작지만 성능은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추가 GPU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테슬라의 영향력은 항공 산업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테슬라의 위성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가 지난 4일부터 한국에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자 대한항공이 기내 와이파이 시스템에 스타링크 도입을 결정했다. 대한항공은 물론 진에어 등 그룹 계열사도 순차 도입할 계획이다. 스타링크는 8000개 이상의 저궤도 위성을 활용해 최대 500Mbps 속도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한항공은 내년 3분기부터 장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기술 도입이 기존 완성차사의 대응 속도를 앞질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테슬라의 최신 기술이 국내 소비자 경험을 빠르게 변화시키면서 브랜드 경쟁력 상승 → 판매 증가 → 투자 확대가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업계는 기술 경쟁력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기아 80주년 행사에서 "자율주행 분야는 다소 뒤처졌고 격차는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격차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며 앞으로 안전 중심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에서의) 테슬라의 독주를 '당연한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위험하다"며 "FSD가 적용된 미국산 차량은 사실상 품절 수준으로 판매됐지만, 국내에 들어오는 테슬라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국산 모델에는 FSD가 적용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점유율이 폭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와중에 저가형 전기차 시장은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점령하는 흐름이어서 국내 전기차가 설 자리가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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