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손원태 기자] 국내 유통업계가 홈플러스에 납품할 물량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하는 등 '홈플러스 엑소더스' 현상을 보이고 있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돌입한 홈플러스가 경영 악화로 인해 납품 대금을 마련하지 못하자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새 인수자를 찾는 것도 난항인 홈플러스 입장에선 고통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과 삼양식품은 올해 하반기부터 홈플러스에 대한 납품을 중단했다. 먼저 아모레퍼시픽은 그동안 홈플러스와 연간 단위 계약을 체결해 납품을 이어왔으나, 지난 8월부터 미수 대금이 해결되지 않아 중단했다. 불닭볶음면으로 9억불 수출탑을 쌓은 삼양식품도 지난달부터 홈플러스 납품을 전면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지난달 말부터 홈플러스와의 납품을 중단한 상태"라며 "정상거래 운영 등 조건이 갖춰지면 다시 납품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LG생활건강에서는 현재까지 홈플러스 납품을 중단한 것은 아니지만, 물량 조절에 나서는 등 상황을 지켜보는 분위기다. 이에 유통업계 전반적으로는 아직 홈플러스 엑소더스 현상이 본격화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 변동 사항이라거나 특이점은 없다"라며 "납품 계약은 진행하고 있지만 홈플러스 사태가 끝나지 않은 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홈플러스는 최근 경영 악화와 영업 차질 등을 이유로 △서울 가양점 △부산 장림점 △고양 일산점 △수원 원천점 △울산 북구점 등 5곳의 연내 영업 중단 가능성을 내비쳤다. 앞서 홈플러스는 지난 9월 '홈플러스 사태 정상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 꾸리면서 M&A(인수합병)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지난달 26일 열린 1차 공개입찰에서 인수 의향자를 찾지 못했다. 법원은 홈플러스의 회생계획안 제출 마감 시한을 오는 12월 29일로 지정했다. 만약 이때까지 홈플러스를 품을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게 되면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홈플러스는 정상 영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 속에 전국 15곳의 폐점을 연말까지 보류했다. 그러나 일부 점포에서 납품 중단과 임대 점주의 퇴점, 인력 유출 등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정상 영업마저 어려워졌다. 홈플러스가 연내 영업 중단 가능성을 밝힌 5곳도 기존 폐점 보류됐던 점포였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연 매출(연결 기준)이 6조9920억원으로 전년도 6조9315억원에서 정체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이 기간 영업손실은 1994억원에서 3142억원, 당기순손실은 5743억원에서 6758억원으로 대폭 확대됐다. 이에 홈플러스는 종합부동산세와 부가가치세, 전기세 등 900억원이 넘는 세금마저 미납한 상태다.
홈플러스 매각 주간사인 삼일회계법인은 홈플러스 청산가치를 3조6816억원, 계속기업가치를 2조5059억원으로 평가했다. 홈플러스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은 만큼 연내 예정된 본입찰에서도 매각이 불발될 경우 업계에서는 큰 파장이 예상된다. 홈플러스의 법정관리 기한은 오는 2026년 3월 3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국내 대형마트 2위 규모였던 만큼 청산 수순으로 이어지면 유통업계 전반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라며 "다만 홈플러스는 납품 대금을 제때 맞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채권 금액이 늘어나지 않는 선에서 일정 부분 물량을 관리해 왔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는 계속해서 매각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일부 유통업체에서 납품 물량을 빼기 시작했지만, 홈플러스는 신선식품과 즉석조리식품 등을 주축으로 해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홈플러스 본점인 강서점을 위주로 프로모션에 돌입했다. 한우와 랍스터 등을 할인가에 내놓거나 후라이드 치킨을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를 판매하는 등의 이벤트에 펼치는 중이다.
홈플러스 측은 "12월 29일 전에 적합한 인수자가 나타날 시 법원의 판단에 따라 매각 절차 연장 및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도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며 "10만명에 달하는 직간접 인원의 고용안정과 협력사, 입점주 보호를 위해 반드시 M&A를 성사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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