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 증권사도 '총력' 주문…'환전 분산' 쟁점 될까?
  • 이한림 기자
  • 입력: 2025.11.26 11:05 / 수정: 2025.11.26 11:05
외환당국, 증권사 통합증거금 시스템 방식 지적
증권업계, 환리스크 노출·고객 불편 초래 '난색'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에서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서예원 기자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에서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서예원 기자

[더팩트|이한림 기자] 정부와 외환당국이 최근 고환율의 주요 원인 중 '서학개미'(해외주식 투자자)의 환전 쏠림 현상을 지목하면서 증권사들이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환율 급등에 대응하는 당국 주도 총력전에 '환전 분산'도 쟁점으로 떠오를지 주목된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당국은 지난 21일 주요 증권사 외환 담당자를 긴급 소집해 대책 회의를 했다.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메리츠증권, 키움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외환시장협의회 소속 증권사들이 명단에 포함됐다.

앞서 외환당국은 환율과 관련한 대책 회의를 소집할 때 시중은행이나 국민연금, 수출기업 등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자들을 불러 협조를 구해 왔다.

그러나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육박하는 등 역사적인 환율 급등기가 이어지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고, 증권사 고객들의 해외 투자 관련 달러 수요 증가를 고환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투자자들의 환전을 지원하는 증권사까지 입김이 닿게 됐다.

실제로 해외 주식 투자자들의 매수세는 올해 역대급 추이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서학개미의 올해 누적 순매수액은 292억1944만달러(약 43조1100억원)로 지난해 연간 순매수액인 105억4500만달러의 3배에 육박한다.

당국이 이번 회의에서 증권사의 통합증거금 시스템의 운영 방식을 고환율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 배경이기도 하다. 통합증거금 시스템은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을 거래할 때 보유한 원화나 기타 외화를 일일이 환전하지 않고도 바로 해외 주식을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대부분 증권사가 고객 편의를 위해 차용하고 있다.

문제는 증권사의 통합증거금 시스템을 통한 환전 처리가 서울 외환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 개장 직후에 일괄적으로 이행된다는 점이다. 당국은 특정 시간에 달러 환전 주문이 대량으로 몰리기 때문에 시장이 수요를 버티지 못하고 수급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에서는 당국의 환전 분산 주문에 비용, 고객 불편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더팩트 DB
증권업계에서는 당국의 환전 분산 주문에 비용, 고객 불편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더팩트 DB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회의에서도 주문 즉시 환전하는 실시간 환전 방식 확대, 하루 평균 환율로 정산하는 시장평균환율(MAR) 방식 도입 등이 환전 쏠림 현상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됐다. 통합증거금 시스템 순기능인 투자자 편의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증권사의 운영 방식을 개선해 시장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기조가 깔려 있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서는 당국이 주문한 환전 분산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고심하는 분위기다. 오랜 기간 운영해 온 방식을 변경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 주문 즉시 환전 등으로 통합증거금 시스템 방식을 바꾸면 투자자들이 실시간 환율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환전 수수료 증가로 이어지는 등 오히려 고객들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해외 주식 주문이 직접으로 이뤄지는 야간 거래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도 우려된다. 해외 시장은 야간에 거래가 활발해 24시간 환전 수요가 발생하지만, 정작 환전 시장은 24시간 열리지 않아 환전 해지(위험 회피)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경우 비용 부담을 고객에게 직접 가중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증권사의 반발에도 환전 시스템 개편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시각이 나온다. 환율 급등이 가져올 경제 전반의 부정적 영향에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어서다. 이에 당국이 당부에 그치지 않고 가이드라인 제시, 의무적 제도 개선 등 증권사에 구체적인 압박을 가할 여지도 높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환전 분산책은 단기적으로 시장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외환 시장의 안전성을 높이는 정부와 당국 취지에 맞을 것"이라며 "증권사도 고객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단계적인 접근을 고민해야 한다. 환전 서비스가 질적 경쟁으로 이어져 새로운 기회를 잡는 증권사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kuns@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