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황지향 기자] 국내 철강업계가 글로벌 공급 과잉, 미국의 50% 관세, 유럽연합(EU) 규제 강화 등 삼중고에 흔들리고 있다. 수출길은 좁아지고, 내수 수요까지 줄어들면서 산업 전반의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철강산업 지원을 위한 'K-스틸법'이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어서 업계가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이하 K-스틸법)이 이르면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커졌다. 정쟁으로 수개월간 발이 묶였으나 지난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데 이어 21일 전체회의에서도 의결돼, 이번 주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27일 본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K-스틸법은 국내 철강산업 지원을 위해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철강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설치 △녹색철강기술 개발 및 투자에 대한 보조금·융자·세금 감면·생산비용 지원 △녹색철강특구 조성 및 규제 혁신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원산지 규정 강화와 부적합 철강재의 수입·유통 제한,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한 정부의 직접 대응 권한 부여도 포함됐다. 아울러 친환경 철강 원료 경쟁력 확보를 위한 관련 산업 육성, 기업의 자발적 산업 재편 지원, 철강 수급 조절이 어려울 경우 정부가 세제·재정 지원을 통해 구조조정을 유도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철강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철강 수요는 10년 전인 2016년 8770만톤에서 꾸준한 감소세를 보이며 올해는 7360만톤(추정)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같은 기간 국내 공급량도 9670만톤에서 7830만톤으로 약 19% 축소됐다.

미국의 관세도 업계 부담을 키우고 있다. 지난 14일 한미 정부가 협상 내용을 담은 팩트시트를 발표했지만, 철강 관세는 협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올해 미국에 납부해야 할 관세 규모는 총 2억8100만달러, 한화로 약 4114억원에 달한다. 이는 두 회사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에 맞먹는 금액으로 사실상 분기 수익 대부분이 관세로 소진되는 셈이다. 관세율 25%가 적용된 3~5월에는 각각 1150만달러, 1220만달러, 3330만달러를 냈지만, 6월부터 관세율이 50%로 인상되면서 납부액은 4260만달러로 급증했다. 3월부터 8월까지 누적 납부액은 총 1억4700만달러(약 2100억원)이다.
EU 역시 철강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EU는 기존 철강 수입 쿼터를 3053만톤에서 1830만톤으로 줄이고 초과 물량 관세율을 25%에서 50%로 높이는 방안을 예고했다. 주요 수출시장 통상 압력과 글로벌 수요 둔화가 겹치며 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업계의 단기적 대응만으로는 구조적 위기 극복이 어렵다고 강조한다. 최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IFS) 탄소중립 클러스터 공동연구진이 IFS 홈페이지에 공개한 '기로에 선 K-철강: 탄소중립 시대의 구조 개편과 글로벌 생존 전략' 보고서도 국내 철강산업이 수출 감소와 외산 수입 확대, 내수 침체 등 구조적 침체에 직면해 있으며 탄소중립 규범 강화에 따라 저탄소 전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수소 환원제철 전환 과정에서 그린수소 확보, 전력 인프라 구축, 대규모 초기 투자라는 3대 장벽에 막혀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국내 시설은 자동차·에너지 등 첨단 산업용 고부가 강재 생산과 연구개발 기지로 특화하고, 호주·캐나다·중동 등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국가에서 그린수소와 철강을 생산해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투트랙 글로벌 허브 전략'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과잉 고로 감축 유인 제공, 고철 순환시스템 고도화, 해외 그린철강 생산 투자에 대한 외교적·재정적 지원 등 구체적 정책 이행 과제도 내놨다.
민동준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투트랙 전략은 국내 산업 기반과 고용을 유지하면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며 "기업 자체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국가 차원의 전략적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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