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기존 예상과 달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노태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무대행 사장을 정식 대표이사 겸 DX부문장으로 선임하며 2인 대표 체제를 복원했고, 2인 대표에게 사업부장직까지 계속 맡기면서 '전영현·노태문 투톱'에 더욱 힘을 실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사장 승진 1명, 위촉 업무 변경 3명 등 총 4명 규모의 2026년도 정기 사장단 인사를 실시했다고 21일 밝혔다. 삼성전자는 통상 12월 초 인사를 단행해 왔으나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위기 선제 대응 등을 이유로 인사 시기를 조금씩 앞당기는 추세다. 올해 사장단 인사의 경우에도 지난해(11월 27일)보다 일주일가량 이른 시점에 발표된 것이다.
◆ 직무대행 뗀 노태문…2인 대표 체제 복원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지난 3월 한종희 전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직무대행 역할을 맡았던 노태문 사장이 대행을 떼고 정식 대표이사 겸 DX부문장으로 선임된 점이다. 기존 대표이사 겸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이었던 전영현 부회장이 유임되며 2인 대표 체제가 복원됐다.
노태문 사장은 삼성전자 히트작인 '갤럭시' 신화를 만든 장본인이다. 연세대 전자공학 학사,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 석박사 등의 과정을 거쳐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팀으로 합류한 그는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통해 모바일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마트폰 사업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4월부터 TV, 생활가전 등 다른 사업 영역의 경쟁력 또한 지속해서 강화하고 있다.
◆ 전영현·노태문, 메모리·MX사업부장 겸직
이번 사장단 인사의 주요 특징은 투톱 체제를 완성한 전영현·노태문 부문장이 기존대로 사업부장까지 겸직한다는 것이다. 전영현 부회장은 메모리사업부장을, 노태문 사장은 MX사업부장을 맡는다. 앞서 재계에서는 노태문 사장이 대표이사직을 맡게 되면, 사업부장 자리를 젊은 경영진이 새롭게 채울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이는 이재용 회장이 전영현·노태문 투톱 체제에 더욱 힘을 실은 것으로 평가된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큰 경영 환경을 고려해 기존 리더십을 유지, 안정을 도모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전영현·노태문 체제 아래 핵심 사업 경쟁력을 지속해서 강화하고, 미래 기술 또한 선점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박홍근·윤장현 등 기술 인재 적극 발탁
이번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은 기술 인재를 과감히 발탁했다는 점이다. 이재용 회장의 '인재 제일' 경영 철학이 반영된 결과로, 전영현 부회장이 맡고 있었던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원장직에 박홍근 사장이 신규 위촉됐다. 내년 1월 1일 입사 예정인 박홍근 사장은 1999년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돼 25년여간 화학, 물리, 전자 등 기초과학과 공학 전반 연구를 이끌어온 글로벌 석학이다. 향후 SAIT원장으로서 나노 기술 전문성 및 학문 간 경계를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양자컴퓨팅, 뉴로모픽반도체 등 미래 디바이스 연구를 주도할 예정이다.
DX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 겸 삼성리서치장으로는 윤장현 삼성벤처투자 부사장이 승진 발령됐다. 그간 윤장현 사장은 MX사업부 사물인터넷(IoT) & Tizen개발팀장, 소프트웨어(SW) 플랫폼팀장, SW담당 등의 보직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말부터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를 맡아 인공지능(AI), 로봇, 바이오, 반도체 등 유망 기술 투자를 주도해 왔다. 윤장현 사장은 DX부문 CTO로서 모바일, TV, 가전 등 주력 사업들과 AI, 로봇 등 미래 기술 간의 시너지를 만들어 나갈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박홍근 사장과 윤장현 사장 인사에 대해 "반도체 미래 신기술 연구와 AI 드리븐 컴퍼니로의 전환을 가속화한다"며 "각 분야 최고전문가를 SAIT원장 및 DX부문 CTO에 과감히 보임, AI 시대 기회 선점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예상과 달리…실제 인사 규모 소폭에 그쳐
이번 사장단 인사는 기존 재계 예상에 비해 소폭이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지난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사건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아 10여년 동안 발목을 잡은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만큼, 다가오는 인사를 통해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앞서 전자 계열사 콘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사업지원TF를 사업지원실로 개편하고, '삼성 2인자'로 불린 정현호 부회장이 용퇴한 점도 변화를 위한 예고편으로 해석됐다. 결과적으로 사업부장 교체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은 현재 부문별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 선도를 위해 변화보단 경영 안정에 주력할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추후 이뤄질 임원 인사에서는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사업 위주로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을 고려, 불확실성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젊은 피'를 대거 전진 배치할 것이란 예상이다. 삼성전자는 "2026년도 정기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은 조만간 확정해 발표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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