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게 약이다] 세상을 바꾼 한알의 혁명…'먹는 피임약' 개발사
  • 조성은 기자
  • 입력: 2025.11.22 00:00 / 수정: 2025.11.22 00:00
소의 황체 연구에서 출발해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되기까지
피임을 '선택'으로 만든 경구 피임약의 탄생과 그 후
경구 피임약의 개발은 여성인권운동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2021년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낙태 합법화 운동에서 올바른 성교육과 피임약에 관한 손팻말을 들고 생진하는 여성. /AP.뉴시스
경구 피임약의 개발은 여성인권운동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2021년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낙태 합법화 운동에서 올바른 성교육과 피임약에 관한 손팻말을 들고 생진하는 여성. /AP.뉴시스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196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세계 최초의 경구용 피임약 '에노비드'(Enovid)를 승인했다. 여성 스스로 임신 여부를 조절할 수 있게 된 순간이다. 이는 곧 교육·노동·가족계획 전반을 뒤흔들어놨다. 이 약이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은 과학·여성운동·윤리 논쟁이 첨예하게 얽힌 투쟁 그 자체였다.

피임의 역사는 오래됐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악어 분변이나 꿀을 질 내에 넣는 방식이 기록돼 있고, 로마 시대에는 식물성 수액을 활용한 질좌약이 쓰였다. 중세에는 금욕이나 질외사정처럼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방식이 주류였다. 19세기 들어 콘돔과 질내 살정제가 등장했지만 종교·윤리적 규제는 여전히 강했고, 임신 여부를 결정할 실질적 권한은 남성에게 있었다.

피임 연구는 낙농업에서 시작됐다. 스위스의 과학자들은 우유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임신시키는 암소의 생식 과정을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난소 속 '황체'가 배란을 억제하는 호르몬, 즉 '프로게스테론'을 분비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이를 대량 합성할 방법이 없었다. 이 난제를 해결한 인물이 미국 화학자 러셀 마커였다. 그는 멕시코산 식물 야생마에서 프로게스테론을 대량 추출하는 길을 열었고, 생식생물학자 그레고리 핀커스가 이를 이어받아 실제 피임약 개발로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여성 피임약'이라는 아이디어를 의약품 개발의 최전선으로 끌어올린 주체는 여성운동가 마거릿 생어였다. 생어의 어머니는 11명의 아이를 낳고 7번의 유산을 겪은 끝에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생어는 "원치 않은 임신이 한 여성을 어떻게 소모시키는지" 지켜본 뒤, 이를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 "아스피린처럼 하루 한 알로 임신을 조절할 수 있는 약"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제약사들을 찾아다녔지만, 종교단체의 반발과 불매를 우려한 기업들은 피임약 연구를 거부했다.

70대에 접어든 생어는 전략을 바꾸었다. 기업 대신 개별 과학자를 설득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핀커스를 찾아냈지만, 문제는 천문학적인 연구비였다. 이때 생어의 절친이자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여했던 캐서린 맥코믹이 등장한다. MIT 최초의 여성 졸업생 중 한명이었던 그는 남편 사망 후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은 상태였다. 맥코믹은 피임약 개발을 위해 당시 기준으로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제공하며 연구를 본궤도에 올렸다.

과학적 기반은 이미 갖춰져 있었다. 프로게스테론이 배란을 억제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경로도 열렸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경구 투여'였다. 초기 프로게스테론 제제는 경정맥 주사로만 투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핀커스 연구팀은 수백 가지 유도체 중 3가지 후보를 추려 동물실험에 성공했고, 이어 인체 시험에 나서려 했지만 미국 내에서는 피임약 임상시험이 법적으로 어려웠다. 연구자 신분의 핀커스는 임상시험을 주도할 수도 없었다.

이 때 하버드 의대 산부인과 교수 존 록이 등장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여성의 산아제한 필요성에 공감했던 그는 연구에 합류해 임상시험을 이끌었다. 미국 본토에서 시험이 불가능하자 당시 규제가 상대적으로 완화된 푸에르토리코에서 임상시험이 진행됐고, 약효와 안전성은 명확히 증명됐다. 이렇게 인류 최초의 경구용 피임약 개발이 성공하게 됐다.

1960년 에노비드가 판매 허가를 받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출시 2년 만에 약 120만명의 미국 여성이 이 알약을 복용했고, 1965년에는 500만명으로 늘었다. 1960년대 말에는 미국 내 대형 제약사 7곳이 경구 피임약을 생산했고, 세계적으로 1200만명이 넘는 여성이 이 약을 사용했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에서 매년 1억5000만건 이상의 피임약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작용 원리는 비교적 명확하다. 합성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틴이 뇌하수체의 호르몬 분비를 억제해 배란을 멈추고, 자궁경부 점액을 끈끈하게 만들어 정자의 이동을 차단한다. 자궁내막을 얇게 만들어 착상 가능성을 낮추는 기능도 더해진다. 이 세 가지 작용이 결합되면서 피임 성공률은 이상적 복용 기준으로 90% 후반대를 기록하게 됐다.

무엇보다, 경구 피임약의 등장은 여성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꿨다. 임신·출산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서 벗어나면서 여성은 교육을 지속하거나 노동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고, 결혼과 출산시기를 계획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며 성 윤리·가족 제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많은 연구는 피임약 보급이 여성의 고등교육 진학률 상승, 경제활동 증가, 성평등 확대에 기여했고 나아가 사회 전반의 경제성장률에도 영향을 미쳤다.

물론 논란과 부작용도 있었다. 초기 제형은 호르몬 용량이 매우 높아 구역감·혈전 위험 등 부작용이 컸고, 종교계와 보수 정치권은 피임약이 성 윤리를 해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이후 저용량·초저용량 제제가 등장하면서 부작용은 크게 줄었고, 생리통 감소·월경량 조절 등 치료적 활용도 확대됐다.

오늘날 경구 피임약은 단순한 의약품을 넘어 한 세기의 사회 구조를 재편한 기술로 평가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과학과 여성운동, 그리고 재생산권을 둘러싼 긴 논쟁이 만들어낸 결과"라며 "피임약은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제도권 논의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pi@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