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KB금융그룹에서 연말에만 6개 계열사 7명의 최고경영자(CEO) 임기가 끝난다. 증권(2인 각자대표)·손해보험·자산운용·캐피탈·부동산신탁·저축은행이 한꺼번에 만기를 맞는다. KB금융 계열사의 최고경영자 임기 관례가 '2년+1년(2+1)' 구조라는 점과 실적·리스크 관리 성적표가 겹치는 분기점에서 세대교체가 다시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취임 직후였던 2023년 겨울 첫 인사에서 임기 만료 8개 계열사 9명의 CEO 가운데 6명을 교체하며 비은행 중심 재정렬과 내부 승진 기조를 분명히 했다. 지난해에는 국민은행·국민카드·KB라이프생명 등 핵심 계열사 수장까지 바꾸며 '안정보다 변화'에 무게를 둔 만큼, 올해 선택에도 금융권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연말 임기 만료 대상은 KB증권의 김성현 IB부문 대표와 이홍구 WM부문 대표, 구본욱 KB손해보험 대표, 김영성 KB자산운용 대표, 빈중일 KB캐피탈 대표, 성채현 KB부동산신탁 대표, 서혜자 KB저축은행 대표 등 6개사 7명이다.
우선 김성현 KB증권 대표는 2019년 1월 취임 이후 다섯 차례 연임에 성공해 이번에 여섯 번째 연임 가능성을 앞두고 있는 대표적인 장수 CEO다. 나머지 6명은 2024년 1월 선임돼 첫 2년 임기를 마무리한다. 반면 올해 초 취임한 이환주 국민은행장, 김재관 KB국민카드 대표, 정문철 KB라이프생명 대표 윤법렬 KB인베스트먼트 대표, 박찬용 KB데이타시스템 대표 등은 내년 말까지 임기가 남아 이번 인사 사이클에서는 한발 비켜 있다.
◆ 관건은 실적과 리스크…'2+1' 넘는 판단 기준
KB금융은 3분기 누적 기준 비은행 계열사에서 2조88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며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비은행 순익 2조 클럽'을 지켰다. 비은행 이익 규모와 기여도가 압도적인 만큼, 이번 인사는 사실상 KB증권·KB손보·KB자산운용·KB캐피탈·KB부동산신탁·KB저축은행 등 비은행 축의 재정렬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된다. 그룹 전체 수익구조에서 비은행의 비중이 높은 만큼, 세대교체 폭과 연임·교체의 조합이 내년 이후 포트폴리오 전략과도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경영승계 절차는 그룹 이사회 내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맡는다. 위원회는 양종희 회장을 위원장으로, 사외이사가 아닌 이사 1인과 사외이사 3인으로 구성된다. 금융감독원이 2023년 발표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라 현직 CEO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에는 승계 절차를 개시해야 하고, 단계별 최소 검토기간도 둬야 한다. 앞서 KB금융은 이 기준에 맞춰 작년 9월부터 위원회를 본격 가동해 11월 중순 은행장 숏리스트를 만들고, 11월 말에는 은행장 및 타 계열사 대표 후보군을 확정했다. 이후 12월 초 최종 후보를 선정해 발표했다. 올해 역시 비슷한 타임라인으로 12월 중순 전후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인선의 '룰'로 알려진 2+1 관행은 기본 2년 임기에 1년 연임을 더하는 구조다. 하지만 실제 연임 여부는 숫자와 질적 평가가 함께 좌우한다. 올해 3분기까지 KB손해보험은 누적 7669억원의 순이익을 내 전년 동기보다 3.6% 늘렸고, 비은행 전체 순익의 3분의 1가량을 책임지며 그룹 '효자 계열사'로 자리잡았다. KB자산운용은 ETF 사업 경쟁력 강화를 바탕으로 전년 대비 65% 늘어난 967억원의 순익을 거뒀다.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적자가 컸던 KB부동산신탁은 적자폭을 눈에 띄게 줄이며 턴어라운드 기대를 키웠고, KB캐피탈과 KB저축은행도 어려운 시장 환경을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실적 흐름만 놓고 보면 대규모 교체보다는 일부 조정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그럼에도 변수는 있다. 우선 2019년부터 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성현 KB증권 대표의 거취다. 김 대표는 KB증권의 회사채·기업어음 발행을 담당하는 DCM(채권자본시장) 부문을 13년 연속 업계 1위에 올려놓는 등 IB 역량을 인정받아왔다. 다만 1963년생으로, 1964년생인 이환주 국민은행장보다도 한 살 많다. 나이와 재임기간이 길어진 만큼 세대교체 필요성을 제기하는 시각과 아직까지 실적과 리더십에 흠결이 없다는 연임론이 맞서고 있다. 이홍구 WM부문 대표 역시 각자대표 체제 속에서 수익성과 질적 성장을 동시에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양종희式 인사 원칙…'안정 속 쇄신' 다시 시험대에
양 회장의 '스타일'도 시장의 눈길을 끈다. 그는 취임 첫해부터 장기 재임 CEO들을 중심으로 과감한 물갈이를 단행하되, 은행·카드 등 핵심 계열사는 유임시키는 방식으로 '안정 속 쇄신' 기조를 보여왔다. 비은행에서는 내부 출신을 대거 발탁해 각 사업부의 전문성과 독립경영을 강화했고, 이후 국민은행장에 비은행 출신인 이환주 당시 KB라이프생명 대표를 앉히는 이례적인 카드까지 꺼냈다.
이런 전례 때문에 업계에선 "실적이 좋다고 해서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는 경계심과 "비은행 강점을 유지하려면 이번에는 안정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이번 인사는 KB금융 내부 승진 기조와 차세대 리더십 라인의 두께를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손보·운용·캐피탈·저축은행 등 비은행 조직에는 영업과 리스크, 디지털을 두루 경험한 40~50대 중간 관리자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양 회장이 이들을 전면에 배치해 세대교체를 본격화할 경우, 그룹 내 인사 파이프라인에 대한 신뢰를 시장에 재확인시킬 수 있다.
반대로 첫 임기를 마친 CEO들의 임기를 연장한다면 '성과 검증이 끝난 라인업으로 외부 변수에 대비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비은행 ROE와 그룹 전체 자본 효율성, 소비자보호·컴플라이언스 역량이 최종 판단의 핵심 잣대가 될 전망이다.
금융지주 전반의 연말 인사 사이클도 비교 대상이다. 신한·하나·우리 등 다른 금융지주 역시 증권·보험·신탁을 중심으로 CEO 임기 만료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KB는 비은행 이익 규모에서 경쟁사들을 앞선 만큼, 이번 인사 방향이 '비은행 강자' 위상을 더 공고히 만들지, 아니면 주력 포트폴리오에 균열을 낳을지에 대한 관심도 크다.
특히 내년은 양 회장 3년 임기의 마지막 해로, 이번 계열사 인사가 향후 회장 연임 논의와도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연말 KB의 선택은 단순한 자리 이동을 넘어, 비은행 축 경쟁력과 지배구조 안정성, '양종희 리더십'의 향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KB 인사는 누가 교체되느냐를 넘어서, 비은행 부문을 다시 큰 폭으로 손볼지 아니면 지금 라인업을 유지하면서 안정에 무게를 둘지를 정하는 과정"이라며 "양 회장이 취임 초기에는 변화를 강하게 밀었지만, 이번에는 실적과 리스크 관리, 소비자보호까지 종합해 보다 안정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