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미국 시장 불확실성을 걷어낸 현대자동차그룹이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관세 협상에 애쓴 정부에 화답하는 구도지만, 내용을 보면 내수 경제 활성화뿐 아니라 미래 산업 변화를 선도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전날 내년부터 2030년까지 국내에 총 125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과 수소 등 미래 신사업 분야에 50조5000억원, 모빌리티 경쟁력 강화 연구개발(R&D) 투자에 38조5000억원, 경상투자에 36조2000억원을 투입한다.
지난 14일 조인트 팩트시트 공개를 통해 현대차그룹은 다소 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미국에서 일본·유럽연합(EU) 등 업체와 경쟁을 벌이지만, 관세는 부담이었다. 글로벌 3위에서 2위로 질주하던 현대차그룹은 올해 들어 3분기까지 불확실성 우려가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공개하며 내수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앞서 올해 초부터 최근 미국에서 열린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의 CEO(최고경영자) 인베스터 데이에서 현대차그룹은 미국 등 글로벌 시장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국내 투자에도 소홀하지 않겠다는 현대차그룹 계획을 보면 단순히 내수 경제 활성화라는 목표에 그치지 않고 산업계 전반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업계에서는 국내 투자 계획에 서남권 1GW PEM(고분자전해질막) 수전해 플랜트 건설이 담긴 점을 주목한다.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그린·핑크·그레이·블루로 나뉜다. 천연가스를 개질해 만들면 그레이 수소, 신재생에너지원으로 물을 전기 분해해 만들면 그린 수소다. 그린 수소 생산에 핵심은 수전해다. 수전해는 알칼리와 PEM(고분자전해질), 고체산화물(SOEC) 등으로 구분된다.
알칼리 수전해는 알칼리성 전해액과 비귀금속 촉매를 사용해 수소 생산 단가가 가장 낮다. 하지만 수소와 산소 혼합 위험과 낮은 에너지 밀도 등 단점이 있다. 반면 PEM은 효율성이 높고 가동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으며 고온에서도 작동하는 강점이 있다.
현대차그룹이 PEM 수전해 플랜트를 건설하겠다고 밝히면서 넥쏘와 이니시움 등 수소차 생산을 넘어 수소 생태계 구축에 뛰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는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정관 사업목적에 수소 사업을 신규로 추가하며 생태계 구축에 시동을 건 바 있다.

정부가 최근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것으로 확정한 것과도 연관이 있다는 평가가 있다. 글로벌 탈탄소 흐름에 정부가 부응하는 상황에서, 수소 사회를 예견한 현대차그룹이 산업 변화에 역할을 다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수소 AI 신도시가 조성되도록 적극 검토하겠다고도 강조했다. 아울러 기아 경기 화성 PBV(목적기반차량) 신규 전기차 거점 구축과 현대차 울산 EV 전용 공장, 수소연료전지 신공장 등 생산시설 확충과 지역 경제 활성화 계획도 알렸다.
국내 투자 계획에는 지난달 엔비디아와의 협력 구체화를 발표했던 피지컬 AI(인공지능) 전략도 담겨 있다. 현대차그룹은 AI 데이터 센터를 만들어 피지컬 AI 로봇과 자율주행차 등에서 생성된 AI 학습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저장소를 PB(페타바이트)급으로 만든다.
현대차그룹이 데이터 저장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국내 전력 인프라 시장도 활력이 돋을 전망이다. 생태계 구축을 맡은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 센터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대차그룹은 대규모 행동 데이터를 학습한 로봇을 검증하고 산업현장 투입 전 신뢰성을 최종 검증할 계획이다.
로봇 완성품 제조·파운드리 공장도 조성한다. 국내 산업계 구조적 변화를 선도하겠다는 심산이다. 앞서 2021년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한 현대차그룹은 지난 8월 대미 투자 규모 210억달러에 50억달러를 추가하겠다고 밝히면서, 현지에 3만대 규모 로봇 공장을 신설한다고 했다.
국내 투자 계획에 로봇 공장도 포함하면서 신사업을 해외에서만 벌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자동차 부품 협력사의 로봇 부품 분야 연구개발을 지원하며 생태계 전반을 전환하며 상생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과 교수는 "현대차그룹이 수소 분야에서 에너지 생산부터 차량 보급·운영까지 뛰어든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기존에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우려가 나온 상황에서 수직계열화를 통해 전반적인 비용 절감이 가능해질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분야와 관련해 국내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기술 유출 방지 등에 유리할 수 있다. 다만 자율주행과 로보틱스에 규정이나 정부 정책이 아직 미흡한 것도 사실인 만큼, 대규모 투자에 다시 정부가 호응할 필요가 있다"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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