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정산 기자] 금융당국이 신용카드 해지·탈회 절차 간소화를 유도하면서 카드사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그동안 카드업계는 회원 이탈을 막기 위해 '해지 방어'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금융소비자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금융당국의 지적이 나오면서 해지 간소화 인프라를 구축한다. 한동안 고객 이탈 속도가 상승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충성회원을 추려낼 수 있는 기회라는 시각도 있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카드사들은 연내 자사 애플리케이션과 홈페이지에 '빨간색 사이렌' 기능을 도입한다. 금감원이 신용카드 해지 절차 간소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카드업계가 인프라 구축에 착수하면서다. 최근 금융권 전반에서 보안 이슈가 부각되자, 부정사용 방지와 소비자 편의성 제고를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동안 카드사별 해지 방식이 제각각이었고, 일부는 상담원 통화 등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카드업계는 정보보안 문제와 탈퇴 절차 간소화가 동시에 함께 언급되는 만큼 회원 이탈이 가파르게 진행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업 카드사와 겸영 은행에서 발급된 신용카드는 1억3341만장으로 집계됐다. 해당 시기 경제활동인구가 2939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1인당 신용카드 4.5장을 소지한 셈이다.
휴면카드도 꾸준히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9월말 기준 전업카드사 8곳(신한·삼성·KB국민·현대·하나·우리·롯데·비씨카드)의 휴면카드 수는 1681만3000장이다. 전년 동기 대비 145만장 가량 증가했다. 휴면카드란 1년 이상 사용 실적이 없는 신용카드를 의미한다.
업계 또한 1인당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카드를 1~2장 수준으로 보고 있다. 불필요한 신용카드가 많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연회비나 상품 구성과 관계없이 소비자 혜택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꾸준히 마련했던 만큼 탈퇴 과정이 간소화될 경우,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던 경쟁마저 제한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무엇보다 여전히 신규 회원에게 실적 조건만 충족하면 현금성 혜택을 제공하고 있고 상품 개발 비용까지 고려하면 매몰비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체리피커' 관리의 중요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해지 절차가 간편해지면 현금성 혜택만 이용한 뒤 즉시 해지하는 소비자가 늘어날 수 있어서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단기 혜택만을 쫓는 고객이 늘면 충성 고객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 맞춤형 혜택 강화와 장기 이용 유도를 위한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고객 확보를 위한 과열 경쟁이 불가피하다. 이탈이 가속화 하는 만큼 신규 유입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9월말 기준 카드사 8곳 중 신규 회원을 가장 많이 확보한 곳은 KB국민카드로 월간 14만4000장 영업에 성공했다. 이어 가장 많은 회원이 탈퇴한 곳은 롯데카드로 16만장이 해지됐다.
일각에서는 충성 고객을 선별할 기회라는 시각도 있다. 휴면 카드 비중을 줄이고 매몰비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사용 비중이 낮은 상품은 해지하고, 고객이 주력 카드 위주로만 이용하는 방식으로 이용 행태가 바뀌면, 충성 고객을 집중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는 의미다.
소비자 혜택 강화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간소화된 절차로 상대적으로 혜택이 부족하거나 다른 카드에 비해 매력이 떨어지는 상품이 우선 해지될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맞춤형 혜택을 늘리거나 포인트·캐시백 등 기존 혜택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한동안 카드업계는 늘어날 고객 이탈을 대비하기 위해 충성 고객 확보 전략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이다. 단기 현금성 혜택만을 쫓는 고객과 장기 이용 고객을 구분하고, 장기 이용을 유도하는 것이 분수령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카드를 정리하고 최적화 된 혜택만 담을 수 있는 만큼 선택 폭도 넓어질 예정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신용카드사 입장에서 해지절차 간소화가 달가울 수는 없다. 신규 회원 유치는 아무리 간소화해도 어려운 대목이지만 심리적으로 이탈이 더욱 쉽기 떄문이다"라며 "단 실질 회원이나 충성 고객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 될 수는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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