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현대자동차그룹과 엔비디아가 피지컬 AI(자율 시스템이 물리적 세계에서 인식·이해·추론·행동하도록 하는 기술) 분야에서 손을 잡았다. 피지컬 AI 구현을 위한 전략적 협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현장에서 엔비디아 블랙웰 기반 AI 팩토리 도입으로 자율주행차, 스마트 팩토리, 로보틱스 분야 혁신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엔비디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당시 엔비디아 아이작 로봇 개발 플랫폼을 활용해 AI 로봇을 개발하고, 자율주행 기술과 가상 시뮬레이션 환경을 만드는 데 협력한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로부터 GPU(그래픽처리장치) 5만장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업계 숙원인 자율주행부터 미래 먹거리인 로보틱스 분야에서 선도적 입지를 확보할 기회를 잡았다. 엔비디아 AI 기술센터와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센터, 데이터센터 국내 설립 등을 추진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월 공개한 내용보다 구체적인 협력 부분을 알렸다. 엔비디아 옴니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공장 디지털 트윈(실제 환경을 3차원 가상 공간에 재현해 생산 과정을 최적화하는 기술)을 구축한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가 글로벌 AI 칩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에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삼성전자, SK, 네이버 등이 대량의 GPU를 확보한 점은 유의미하다는 평가가 있다. 하정우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은 "굉장히 중요한 시드 인프라가 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국내 기업이 엔비디아에 중요한 고객이 된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언급된다. 우선 중국이 자국산 GPU 사용을 독려하며 엔비디아 칩 사용을 규제하는 점이다. 물론 엔비디아에 손을 내미는 기업이 더 많은 상황이다.

한국이 갖는 장점도 언급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는 지난달 31일 "한국은 소프트웨어 제조와 AI 역량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AI에 반드시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제조 역량 등 핵심 기술을 가진 나라가 몇이나 되겠느냐"라고 말했다.
젠슨 황 CEO는 1월 CES 2025에서 "AI의 다음 개척지는 피지컬 AI"라며 "AI가 단순 인식이나 생성형 모델을 넘어 물리적 환경으로 확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은 피지컬 AI로 가는 과정에서 테스트베드로 한국을 낙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지컬 AI는 시공간 개념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금이 많이 필요하고 상당한 시간도 확보해야 하기에 시뮬레이션 설루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분야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현대차그룹 니즈와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젠슨 황 CEO는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소재 깐부치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회동하고, 이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따로 만났다. 엔비디아 최대 고객 중 하나가 모빌리티 기업인 현대차그룹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유럽 등과 달리 한국은 통신망이 잘 되어있다. 모빌리티는 GPS 데이터가 중요하다. 통신망이 깔리지 않으면 쉽지 않다. 모빌리티 분야에서 잘 될 가능성이 있다. 테스트베드로서 유의미하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GPU를 확보한 사실만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밸류체인을 만드는 작업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도, 기업도 세심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 최 교수 시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제가 많은 만큼 '집단 지성'이 필요하다고 봤다.
최 교수는 "GPU는 인프라기에 인프라를 세팅하는 실력이 필요하다. 5만장 이상을 세팅한 경험이 없다. 아울러 토지, 전력, 시설, 클라우드, 인증 문제 등 많은 돈이 들어갈 수 있다"며 "시행착오도 겪을 것이다. 기존 시스템을 고치는 작업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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