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차주 찾는 저축은행…대기업 대출 '고공행진'
  • 김정산 기자
  • 입력: 2025.10.22 11:20 / 수정: 2025.10.29 16:40
중소기업 대출 감소 흐름…'서민금융기관' 취지 무색
저축은행, 대기업 대출 주 수익원? '불가능' 일축
저축은행이 대기업 대출을 확대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개인사업자 대출은 감소세다. /김정산 기자
저축은행이 대기업 대출을 확대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개인사업자 대출은 감소세다. /김정산 기자

[더팩트ㅣ김정산 기자] 저축은행의 대기업 대출 규모가 몸집을 키우며 올 상반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건전성과 수익성 확보를 노린 전략이지만, 일각에서는 서민금융기관으로서의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 기준 전국 저축은행 79곳의 총대출 잔액은 94조903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2년 3분기 116조2463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조4846억원 줄어든 만큼 이같은 속도라면 내년에는 80조원선까지 내려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출은 각각 43조2119억원, 14조3097억원으로 줄었다. 중소기업 대출은 지난 2021년 3월 이후 4년 만에 43조원대로 내려섰고, 개인사업자 대출 역시 같은 기간 14조원대 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과거 주 먹거리였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경우 대출을 받는 시행사가 중소기업인 경우가 잦았던 만큼 중소기업 대출이 흥행했지만, 신규 PF 규모를 쪼그라든 상황에선 마땅한 반등 요인이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대기업 대출은 상승세를 나타내면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6월말 기준 저축은행 대기업 대출 잔액은 3조5221억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23.5% 증가한 수치다. 이어 지난해 동기 대비 대기업 대출 잔액을 늘린 저축은행은 총 50곳으로 전체 저축은행의 63.3%를 차지한다. 업계에서는 상장을 준비하는 대기업이 저축은행을 통한 단기 자금 조달을 늘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어음(CP) 발행이나 기업공개(IPO)를 앞두면서 일시적 자금 수요가 확대된 것이다.

최근에는 증권사를 통해 대출받은 뒤 이를 2금융권으로 넘기는 '셀다운(sell-down)'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증권사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한 뒤, 해당 채권을 저축은행 등으로 이전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구조다. 담보 대출보단 신용도를 활용한 단기 운전자금 성격의 대출이 대부분으로, 저축은행으로 안정적인 수익 확보 수단이 되고 있다.

◆ 대기업 대출 늘고, 중소기업 줄어

올 상반기 저축은행 중 연간 대기업 대출을 가장 크게 확대한 곳은 애큐온저축은행이다. 지난해 상반기 1000억원대에 그쳤지만, 올해 3배 가까이 불어난 2973억원을 취급했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같은 기간 3240억원 축소했으며 개인사업자 대출은 40% 줄어든 6987억원으로 집계됐다.

최근 5년간 대기업 대출을 취급하지 않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관련 시장에 뛰어든 저축은행은 국제·대한·웰컴·인천저축은행 등 4곳이다. 그중 취급액이 가장 큰 곳은 인천저축은행으로 올해 총 164억원가량 취급했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저축은행의 대기업 대출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 대출을 늘리는 저축은행의 행보를 두고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을 줄이고 대기업 대출을 확대하는 것이 서민금융기관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중소기업 대출이 고공행진하던 2020~2022년에도 PF 중심 론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던 만큼 자금이 필요한 지역 중소기업 중심 대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저축은행들은 아직 중소기업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설명한다. 사업자금 대출의 경우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자 주택담보대출로 나가는 비중이 높고, 신용대출로는 차주의 금리 부담이 커 적합한 수요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대출 수요 자체는 꾸준하지만, 실사와 심사 과정에서 건전성 관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실행이 어려운 사례가 많다는 입장이다.

대출 포트폴리오를 대기업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도 현실적인 한계가 뚜렷하다고 분석다. 대기업 대출 잔액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축은행 전체 대출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비중을 따져보면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출이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올해 가계자금 대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만큼, 여전히 '서민의 급전창구'라는 본래 역할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

올해 저축은행은 긴축 기조를 유지하며 연체 위험을 최대한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중소형 저축은행은 아직 순이익 확대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인 만큼, 업권 전체로 보면 추가적인 업황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다.

올 상반기 전체 저축은행의 순이익은 총 2570억원으로 흑자를 달성했지만, 그중 상위 5곳(SBI·OK·한국투자·웰컴·애큐온저축은행)이 1587억 원을 기록하며 전체 이익의 61.8%를 차지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올해 저축은행이 새로운 수익창구를 개발하기 위해 대기업에서도 활용할만한 상품의 영업을 확대한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그러나 전반적인 대출 공급 규모가 커지지 않는 이상 올 상반기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imsam11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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