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배상 웬 말"…한투, 벨기에펀드 신뢰 '흔들'
  • 윤정원 기자
  • 입력: 2025.10.21 00:00 / 수정: 2025.10.21 00:00
한투증권 "'선제'라는 단어, 혼동 일으켜"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벨기에 펀드 보상 기준을 두고 피자자들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팩트 DB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벨기에 펀드 보상 기준을 두고 피자자들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윤정원 기자]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벨기에 오피스 부동산 펀드가 '전액 손실'로 귀결되면서, 투자자 피해와 불완전판매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한투증권이 자산운용사와 협의 끝에 제시했다고 알려진 배상안은 오히려 투자자들의 반발을 키우는 모양새다.

◆ 미봉책 비판 확산…"감경 노린 선제조정?" 시선도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달 15일부터 벨기에펀드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 KB국민은행, 우리은행에 현장 검사에 착수했다. 해당 펀드는 벨기에 정부가 사용하는 현지 건물의 장기 임차권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2019년 6월 설정됐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공모와 사모를 나눠 총 900억원을 모집했고, 이 중 한국투자증권이 589억원,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각각 200억원, 120억원어치를 판매했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당초 5년간 운용한 뒤 임차권을 매각해 수익분배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현지 부동산 가치 하락과 임차인 계약 해지 등이 겹치며 매각에 실패했다. 결국 회수금 '0원'의 전액 손실이 확정됐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3월 자산운용보고서 공시에서 "연내 펀드를 상환할 예정이지만 투자자에게 분배되는 금액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현재 2500명에 달하는 벨기에펀드 투자자들은 '안정적인 월 배당형 상품'으로 안내받고 투자한 경우가 많다며 불완전판매를 문제 삼고 있다. 이에 한투증권은 최근 내부 검토를 거쳐 피해 정도와 판매 경위를 고려해 배상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투증권 투자자 규모는 약 580억원이며, 투자자들에 따르면 한투증권은 약 20~50% 수준의 배상안을 제시한 상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이를 사실상 '면피성 조치'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투증권의 배상안 제시를 두고 금융감독원 제재 수위 감경을 염두에 둔 선제조치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금감원은 통상 불완전판매 사실뿐 아니라 사후 대응 태도를 제재 수위 결정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피해 구제 노력이나 내부통제 강화 조치를 얼마나 성실히 이행했는지가 감경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 라임 사태 때 일부 판매사(우리은행·기업은행·KB증권 등)는 금감원 분쟁조정 이전에 자율 배상안을 먼저 제시해 제재 수위를 낮췄다. DLF(파생결합펀드) 사태 때도, 선제적 보상과 내부통제 강화 계획을 내놓은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은 징계 수위가 감경된 전례가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감독당국이 선제적 피해 구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구조라, 판매사들이 제재 완화를 염두에 두고 배상안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며 "한투 역시 비슷한 판단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한투증권 측은 "타 판매사 대비 발 빠르게 조치를 진행한 것은 맞지만, '선제'라는 표현과는 괴리가 있다.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일 뿐 당사가 자의, 잣대로 배상 비율을 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 한투 '안정·보수' 이미지 어디로…금감원 제재 수위 '눈길'

한국투자증권은 그간 업계에서 비교적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영업기조를 이어가는 곳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고위험 상품 손실 사례가 잇따르며 신뢰에 금이 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투는 2020년 라임자산운용 펀드를 약 2000억원 규모로 판매했다 당시 금감원은 불완전판매가 일부 확인됐다며 과태료와 미비 제재를 부과했다. 이어 디스커버리펀드와 독일·영국 부동산펀드 등에서도 원금 손실이 발생했고, 다수의 분쟁조정이 진행됐다. 코로나19 이후 부동산·대체투자 시장이 흔들리면서 상품 구조 리스크 관리 부실이 노출됐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한투는 한때 ‘리스크 관리의 모범생’으로 불렸지만, 최근 몇 년간 실적 압박 속에 리테일 중심 고수익 상품을 확대하며 체질이 변했다"며 "이제는 신뢰 회복을 위해 리스크 관리 역량을 다시 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단순히 상품 실패가 아니라 판매 중심 영업모델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례"라며 "사후 배상보다 사전 검증이 강화되지 않으면, 제2·3의 벨기에펀드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후 핵심 과제로 금융소비자 보호를 내세운 만큼 벨기에펀드 판매사에 대해 강도 높은 검사가 이뤄질 거란 관측도 나온다. 이 원장은 지난 9월 8일 금융투자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도 "임직원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가족에게 권하기 어려운 상품은 판매를 지양해야 하며, 투자자가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상품 설명을 강화해 불완전판매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조사는 사모형 해외 부동산 펀드 전반에 대한 감독 강화 움직임과도 맞물려 있다. 지난 몇 년간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대체투자 상품의 부실이 잇따르면서, 금융당국은 판매사 책임 확대와 내부통제 강화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금감원은 투자 성향을 무시하고 소비자에게 가입을 권유했는지, 손실 가능성 안내는 제대로 이행했는지 등을 따질 방침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금융투자업자는 투자자에게 손실을 보전하거나 이익을 보장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 이는 사전 약속은 물론 사후보전도 포함되며 위반 시 형사처벌 대상이다. 판매사들은 피해자들에게 자율배상을 실시하고 있다. 다만 불완전판매로 인한 배상 책임이 인정되면 배상률은 이보다 확대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 권유 과정에서 위험 설명이 충분했는지, 내부 심사 절차에 문제가 없었는지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라며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garde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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