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자금 불인정" 뒤집힌 '세기의 이혼'…노소영 역풍 가능성
  • 이성락 기자
  • 입력: 2025.10.16 13:00 / 수정: 2025.10.16 13:00
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 파기환송
"'노태우 비자금' 재산 분할 대상 삼아선 안 돼"
비자금 존재 스스로 알린 노소영 역풍 맞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이새롬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대법원=이성락 기자] 대법원이 '세기의 이혼' 소송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노태우 비자금'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기여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핵심 내용으로,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당연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승소하기 위해 비자금의 존재를 스스로 알린 노 관장이 추후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에 대해 파기환송을 선고했다. 재산 분할 청구 부분에서 노 관장 측 주장을 인정한 항소심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판결이다.

해당 이혼 소송은 최 회장의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인정할지 여부가 핵심이었다. 특유재산은 혼인 전부터 각자 소유하던 재산 또는 혼인 중 상속·증여로 취득한 재산을 말한다. 앞서 1심은 최 회장의 ㈜SK(옛 대한텔레콤) 주식을 특유재산이라고 판단,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증여·상속받은 SK 주식을 특유재산이 아닌 공동재산으로 보고 재산 분할액 1조3808억원을 책정했다.

항소심 판결에는 '노태우 비자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노 관장 측이 제시한 모친 김옥숙 여사의 '선경(SK 전신) 300억' 메모와 약속어음(50억원짜리 6장) 사진 등을 통해 비자금이 SK에 유입됐다고 판단했고, SK 성장에 대한 노 관장의 기여까지 인정, SK 주식을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시켰다.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300억원의 자금이 SK에 지원됐다고 하더라도 노 관장의 기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원한 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 분할에서의 피고(노소영)의 기여로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다"며 "결국 노 전 대통령의 행위가 법적 보호 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 분할에서 피고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심은 노 전 대통령 금전 지원 사실을 원고 명의 SK 주식회사 주식 및 원고의 상속 주식의 형성이나 가치 유지·증가에 대한 피고의 기여로 참작했다"며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민법 제746조 불법 원인 급여와 재산 분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 이재근 변호사가 16일 오전 이혼 소송 상고심 선고 직후 법정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 이재근 변호사가 16일 오전 이혼 소송 상고심 선고 직후 법정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이러한 대법원 판단을 놓고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당연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항소심 선고 당시에서도 비자금 전달 방식과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이 특정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비자금 유입을 인정하더라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딸인 노 관장의 기여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타당성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돼 왔다.

만약 이날 항소심 판결이 확정됐다면, 결과적으로 불법 자금의 대물림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꼴이었다. 노 관장이 과거 부친의 비자금을 통해 상속·증여세 없이 1조3808억원이라는 돈을 물려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이번 대법원 판결은 대중의 법 감정과 사회적 여론도 고려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 입장에서 이번 대법 판결은 일정 부분 명예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서 항소심 판결로 마치 '노태우 비자금'과 6공 특혜가 그룹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비친 것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룹의 성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SK 구성원의 노력과 헌신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항소심의 여러 가지 법리 오류, 사실 오류를 시정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비자금 등 노태우 정권이 SK 성장을 지원했다는 부분에 대해 대법원이 부부 공동재산 기여로 인정하는 건 잘못이라고 명확히 선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각의 억측 또는 오해가 추후 해소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노 관장 입장에서는 추후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분위기다.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비자금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 일가와 관련한 추가 비자금 조성 논란만 일으킨 셈이다. 그간 시민단체들은 노 관장의 불법 비자금 은닉 의혹 관련 고발을 이어 나가는 등 실체 규명 목소리를 키웠다. 수사당국과 세무당국은 소송 결과를 지켜본 뒤 '노태우 비자금' 조사에 본격 돌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이 '노태우 비자금'의 불법성을 강조하면서 정치권 내 환수 움직임 또한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반인권적 국가범죄로 인한 범죄수익을 몰수하는 내용의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며 "추가로 드러난 비자금을 환수할 수 있는 법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rocky@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