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미국이 중국 바이오기업을 겨냥한 '생물보안법'을 상원에서 통과시키면서 글로벌 바이오 공급망 재편이 가시화되고 있다. 법안이 연내 최종 입법되면 중국 주요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의 미국 내 활동이 사실상 제한될 전망이다. 국내 기업들에는 반사이익이 기대되는 한편 경쟁 구도가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3일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미국 상원은 지난 9일(현지시간) 빌 해거티·게리 피터스 의원이 공동 발의한 국방수권법 개정안(S.2296)을 찬성 77표, 반대 20표로 가결했다. 개정안에는 특정 바이오 기술 제공업체와의 계약을 금지하는 생물보안법 조항이 포함됐다.
이로써 법안은 지난 9월 하원을 통과한 국방수권법 개정안(H.R.3838)과의 조정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양원이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타협안을 도출하면 대통령 서명을 통해 법은 즉시 시행된다. 업계는 올해 말 발효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생물보안법은 미국 정부가 지정한 '우려 기업'에 대한 계약, 대출, 보조금 제공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엔 구체적인 명단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초안에는 중국의 주요 CDMO 기업인 우시바이오로직스, 우시앱텍, 그리고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 BGI·MGI·컴플리트지노믹스 등이 표적으로 명시된 바 있다.
중국 CDMO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배제되면 대체 공급망으로서 한국 기업의 입지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CDMO와 거래하는 미국 바이오기업들이 국내 업체에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특히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글로벌 CDMO 시장에서 5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업체다. 때문에 중국 CDMO로부터 이탈한 고객사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유입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달 미국 제약사와 약 1조8000억원 규모의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하는 등 경쟁력을 입증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의 일방적인 수혜로만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일본과 인도의 공세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경쟁 압력도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에도 기회지만 일본·인도 등에게도 기회"라며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도는 원료의약품(API)과 제네릭 의약품 생산력을 기반으로 '저비용·대량생산형 CDMO' 전략을 추진 중이다. 미국 바이오기업들이 기존 중국 파트너를 대체할 현실적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일본은 고품질을 내세워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후지필름은 지난 9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북미 최대 규모의 세포배양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을 준공하며 약 4조5000억원을 투자했다. 회사는 연내 생산능력을 32만L(리터)까지 확대하고, 2028년에는 75만L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생물보안법과 함께 미국은 적대국과 협력하는 연구기관에 대한 연방 연구자금 지원을 금지하는 '세이프(SAFE) 연구법' 등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중국 군사·정보기관과 협력하는 대학이나 연구원에게 연방 및 국방부 자금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탈중국' 기조를 강화하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생물보안법은 단순한 무역 제재가 아니라 바이오산업을 안보산업의 범주로 편입시키는 조치"라며 "한국 기업에도 데이터 관리·보안 측면의 강화가 요구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공급망 신뢰성과 정보보호를 기준으로 산업 파트너를 재편하는 만큼 한국 기업이 기술력뿐 아니라 규제 대응력과 생산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