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원·달러 환율이 1420원을 돌파했다. 추석 연휴 이후 8일 만에 재개된 국내 증시는 반도체 업종 강세에 힘입어 상승세로 출발했지만, 환율 급등세가 새로운 불안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1450원 이상으로 치솟을 경우 한국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10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보다 23.0원 오른 1423.0원으로 출발했다. 이는 장중 1440원을 기록했던 지난 5월 2일 이후 약 5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은 "연휴 동안 유로화와 엔화 약세로 달러인덱스가 99포인트까지 급등했다"며 "이 같은 글로벌 달러 강세가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 매도와 수출 기업의 달러 매도(네고) 물량이 환율 추가 상승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환율 불안 속에서도 국내 증시는 강세로 출발했다. 오전 10시 8분 기준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5.73% 오른 9만4150원, SK하이닉스는 10.75% 급등한 43만8000원에 거래됐다. 연휴 기간 AMD와 오픈AI가 전략적 협업을 발표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확대 기대감이 반도체 업종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증시 상승세와 별개로 시장의 시선은 환율에 집중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갈 경우 △수입물가 상승 △외국인 자금 유출 △인플레이션 압력 확대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원화 약세는 한국 자산의 가격 매력을 높여 단기 매수세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변동성이 커지면 투자 위험 요인으로 받아들여져 자금 회수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한·미 간 통화스와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점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하의 대가로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선불' 조건으로 요구하면서 구체적 집행 방안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대미 3500억 달러 투자 계획은 재정·외환·민간 자금 동원 측면에서 모두 난제가 존재해 조달 과정의 난항이 불가피하다"며 "민간 자금을 대규모로 끌어올 경우 금리와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미 관세 협상이 외환시장 불안으로 이어지며 당분간 환율에 상방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다만 협상 과정에서 요구 조건이 완화되거나 통화스와프 체결이 긍정적으로 진행될 경우 원화가 힘을 얻어 환율 상단이 제약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10월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1370~1420원으로 제시하며 "관세 불확실성으로 1400원을 중심으로 등락하다가 월말이 가까워지면서 완만한 하락 흐름을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한은행도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백석현 연구원은 "10월 환율은 1380~1420원 범위에서 상고하저 흐름을 보일 것"이라며 "미·중 정상회담 및 APEC 계기 한·미 관계 개선 기대감도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환율이 단기간에 1450원 이상으로 치솟을 경우 한국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은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설 경우 단순한 단기 변동성이 아니라 과거 외환위기처럼 금융·실물 부문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며 "외국인 자금 이탈과 수입물가 급등이 겹치면 경제 펀더멘털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