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태광산업의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 발행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태광산업 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제기한 2건의 교환사채 발행 관련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하면서 태광산업의 손을 들어줬지만, 주주 반대에 직면한 기업들은 교환사채 발행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어서다. 자사주 의무 소각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안 논의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자사주를 기초로 교환사채 발행에 나선 기업들이 주주 반대에 백기를 들고 있다.
장기 불황에 시달리는 화학사들은 다양한 자금 조달 방안을 검토하면서 자사주를 기초로 교환사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SKC와 SK이노베이션은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태광산업은 지난 6월 24.41% 자사주 전량을 EB 발행에 쓰겠다는 처분 계획을 밝혔다가 주주들의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자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주주 서한을 보내 이달 중 이해관계자의 의견과 급변하는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교환사채 발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10일 법원에서 회사의 자금조달 결정이 경영판단의 영역에 속한다며 태광산업의 손을 들어주면서 향후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 발행이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개정 상법에서도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실제로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1~8월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 발행 규모는 1조411억원으로 지난해 8450억원 규모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주주 반발과 시장 상황, 3차 상법 개정안이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기업들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나온다.
KCC도 보유 자사주 절반 이상을 EB 발행에 쓰겠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자사주 처분 계획을 내놓은 지 6일 만에 철회했다. KCC는 지난달 30일 정정공시를 통해 "회사의 경영환경과 주주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보다 명확하고 안정적인 방향을 택하고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정치권도 압박에 나섰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태광산업의 자사주 기반 EB 발행 관련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한 것을 두고 "자사주는 본래 주주환원 수단이지만, 현실에서는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악용돼 소수주주의 권익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법원 결정은 이를 도외시하고 상법 개정의 취지를 외면한 잘못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사주를 기초로 한 교환사채 발행은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입법이 필요하며,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자사주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를 차단하기 위해 상법 개정을 빠르게 추진 중이다. 1차 개정안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모든 주주로 확대했고, 2차 개정에서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담았다.
현재 논의 중인 3차 개정안의 핵심은 신규 취득분은 물론 기존 보유 자사주까지 소각 의무를 부과하는 데 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신규 취득 자사주는 즉시, 기존 보유분은 6개월 내 소각을 명시하고 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신규·기존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1년 내 소각을 규정한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안은 신규는 6개월, 기존 자사주는 5년 이내 소각을 허용하는 유예 조항을 담고 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열린 '대한민국 투자 써밋(Korea Investment Summit)' 국가 IR 행사에서 "3차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며, 저항이 없지는 않지만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실제 시행할 것"이라며 상법 개정안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시장 반응이 비우호적인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3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 발행은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관행을 다 바꿔야 하는 만큼 기업들이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를 발행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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