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 뉴노멀<상>] 반복되는 중대재해, 기업 존립도 흔든다
  • 최의종 기자
  • 입력: 2025.10.04 00:00 / 수정: 2025.10.04 00:00
수사기관, 엄정 대응 기조…정부, 금융 제재 카드도 만지작
이재명 정부가 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기업들이 비용과 시간 등을 이유로 안일하게 생각했던 산업 현장 안전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대통령실
이재명 정부가 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기업들이 비용과 시간 등을 이유로 안일하게 생각했던 산업 현장 안전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대통령실

새 정부 출범 초기는 정권의 힘이 가장 강할 때다. 이 시기에 정부와 여당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정책은 파급력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다양하고,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기업도 새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산업 안전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 나가는 모양새다. 산업 현장 안전의 '뉴노멀'과 기업 대응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발생한 사고와 책임자 처벌을 직접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산업재해 사망사고 소식이 계속 들리는데, 원인을 신속하고 철저히 조사하고 안전조치에 미비점이 없었는지 확인해 엄정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산업계에서 현장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자, 이 대통령은 "모든 사고를 직보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8월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이 모든 산재 사망사고를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직보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정권의 힘이 가장 강한 시기인 새 정부 임기 초반 '산재와의 전쟁'을 시작한 셈이다.

새 정부 기조에 발맞춰 기업들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그룹은 포스코와 포스코이앤씨 등 계열사에서 연이어 산업재해가 발생하자 장인화 회장 직속 그룹 안전특별진단 TF(태스크포스)를 꾸려 대응하고 있다. 또한 안전 전문 회사 포스코세이프티솔루션도 설립했다.

산업 현장 안전에 대한 변화의 싹은 전임 민주당 정권에서 싹을 틔웠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진까지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 1월부터 시행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산업재해가 사라지지 않았지만, 기업은 현장 안전 대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변화는 안전보건관리체계가 구축되고 안전보건 전담 조직이 설치된 점이다. 안전보건총괄책임자가 선정돼 현장 안전보건관리를 책임지고 산업재해 발생 시 책임을 지는 역할을 맡게 됐다. 물론 현행법상 최고경영자(CEO)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나면서 판례도 조금씩 쌓여 형사사법체계에도 영향을 줬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초기 수사는 고용노동부가 맡고, 기소 여부는 검찰이 판단한다. 법원은 최종 형사처벌 여부를 판단한다. 이 가운데 이재명 정부의 산업재해 근절 기조는 엄벌 기조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정부의 강경 기조 속 검찰은 산업 현장 중대재해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산업 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은 사실관계 확인과 책임 소재 확인, 법 적용 확인 등으로 최종 법원 판단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상태다.

지난해 6월 경기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인 아리셀에서 박순관 에스코넥 대표가 23명 사망자를 낸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취재진 질의를 받는 모습. /임영무 기자
지난해 6월 경기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인 아리셀에서 박순관 에스코넥 대표가 23명 사망자를 낸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취재진 질의를 받는 모습. /임영무 기자

대검찰청은 지난달 1일부터 중대산업재해 사건 신속 수사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노동부와 정례적으로 수사 상황 점검 회의를 열고, 전국 사건 경과를 점검하며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달 16일부터는 산업재해 사건 관련 엄정 대응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수사 기관이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사법부도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모양새다. 지난달 23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박순관 대표가 1심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박 대표는 지난해 6월 경기 화성 공장에서 불이 나 노동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사건과 관련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못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사업 총괄책임자, 경영 책임자로 기소됐다.

박 대표가 받은 징역 15년은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소된 사건 중 내려진 최고 형량이다. 수원지법 형사14부는 지난달 23일 양형에 대해 "다수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에서조차 경한 형이 선고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라고 봤다.

산업계에서는 현재 노동부와 검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사건이나 재판에 넘겨진 사건도 엄정 처벌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 건설업과 조선업, 철강업, 자동차 제조업 등 대부분 기업이 조사를 받거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형사처벌을 통한 경영 공백 발생 가능성 외에도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으면 사업 자체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5일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중대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건설사에 대해 노동부가 관계부처에 등록 말소를 요청할 규정을 만든다고 밝혔다.

정부는 대출 금리나 한도, 보험료 등에 번영되도록 금융권 자체 여신심사 기준과 대출 약정도 개편하기로 했다. 분양보증이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보증 취급 시 '안전도 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 발생 법인은 최소 30억원의 과징금도 부과한다.

이와 함께 상장회사는 중대재해가 발생하거나 중대재해처벌법으로 형사판결이 나오면 바로 공시하는 것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기업 브랜드 가치에도 영향을 주는 셈이다. 기업들은 자연스레 '안전 경영'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경영계는 '엄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안전 종합대책 발표 직후 입장문을 내고 "기업경영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나아가 존폐를 결정짓는 전방위적인 내용을 포함한다"라고 우려했다.

경총은 "강력한 엄벌주의 기조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인가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안전보건관계 법령 사업주 처벌은 이미 최고 수준이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산재 감소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라고 했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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