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못 채운 이정애 LG생건 대표, 결국 용퇴…배경은?
  • 문은혜 기자
  • 입력: 2025.09.30 00:00 / 수정: 2025.09.30 10:44
내년 3월 임기만료 전 용퇴 결정…새 대표는 외부출신 이선주 사장
올 2분기 화장품 사업 적자, 에이피알에 시총 추월 등 부진
LG생활건강이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 출신의 이선주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면서 이정애 대표는 임기 만료 시점보다 6개월 먼저 회사를 떠나게 됐다. 사진은 이정애 LG생활건강 대표(왼쪽)와 오는 10월 선임 예정인 신임 이선주 대표(오른쪽). /LG생활건강
LG생활건강이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 출신의 이선주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면서 이정애 대표는 임기 만료 시점보다 6개월 먼저 회사를 떠나게 됐다. 사진은 이정애 LG생활건강 대표(왼쪽)와 오는 10월 선임 예정인 신임 이선주 대표(오른쪽). /LG생활건강

[더팩트 | 문은혜 기자] 18년 동안 LG생활건강을 이끌었던 차석용 부회장에 이어 '첫 여성 CEO'라는 타이틀을 달고 LG생활건강 대표이사에 올랐던 이정애 사장이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글로벌 K-뷰티 열풍으로 화장품 업계가 급변하는 가운데 국내 뷰티 투톱 중 하나였던 LG생활건강이 에이피알과 같은 신흥 뷰티 업체들에 밀리기 시작하자 이에 책임지고 용퇴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2월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 LG생활건강 브랜드 정비와 사업구조 고도화를 진두지휘했던 이정애 대표가 3년 만에 수장직을 내려놓는다.

이 대표의 임기는 내년 3월 28일까지다. 그러나 LG생활건강이 오는 10월 1일자로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 출신의 이선주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면서 이 대표는 임기 만료 시점보다 6개월 먼저 회사를 떠나게 됐다.

이번 인사와 관련해 LG생활건강 측은 "이정애 사장은 어려운 경영 환경과 소비트렌드의 급변 속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브랜드 정비와 글로벌 사업 리밸런싱 중심의 사업구조 고도화를 지속 추진해왔으나 LG생활건강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새 CEO를 중심으로 내년 이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정기인사 이전에 용퇴를 결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 대표 용퇴의 배경에 몇년째 부진한 LG생활건강의 실적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LG생활건강의 연결 매출액은 6조8119억원으로 전년 대비 0.1%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은 5.7% 감소한 4590억원에 그쳤다. 올해 들어서도 실적 부진은 이어졌다. 올해 상반기 연결 매출액은 3조3027억원, 영업이익은 197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3%, 36.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K-뷰티 열풍 속에서도 화장품 사업 부진이 이어졌다는 점이 뼈아팠다. 올해 2분기 LG생활건강 화장품 사업부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4% 감소한 6046억원을 기록했고 163억원의 영업손실로 적자 전환했다. 화장품 사업 적자는 82분기 만에 처음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화장품 사업 부진과 관련해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원가 부담이 커진 데다 면세, 방문판매 등 전통 채널을 중심으로 국내 사업 구조를 재정비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뷰티 투톱으로 군림하던 LG생활건강이 실적은 물론이고 신흥 뷰티 기업인 에이피알에 지난 6월 시가총액까지 역전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업계에서는 화장품 시장에 판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시총 역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K-뷰티 산업의 구조적 전환이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LG생활건강이 '대표이사 교체'라는 초강수로 또 다시 분위기 반전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LG생활건강은 앞서 지난 2022년에도 실적 부진을 이유로 무려 18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던 최장수 CEO 차석용 부회장을 교체한 전례가 있다. 차 부회장은 2005년부터 LG생활건강을 이끌며 매년 실적을 경신해 '차석용 매직'이라는 수식어까지 만든 인물이다. 치 부회장이 회사를 이끈 시절 17년 연속으로 LG생활건강의 매출이 신장해 2005년 1조원이던 매출은 2021년 8조원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중국 시장과 면세 채널에 과도하게 의지했던 전략이 역효과가 나면서 지난 2022년부터 매출이 꺾이기 시작했고, LG생활건강은 새 사령탑 자리에 LG그룹 사상 첫 여성 사장인 이정애 대표를 선임하면서 시장을 놀라게 했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화장품 사업의 경쟁력을 다시 궤도에 올려놔야 하는 과제를 받은 이 대표는 지난 3년 간 주력 브랜드인 '더후'를 리브랜딩하고 해태htb 등 음료 자회사 매각을 추진하는 등 포트폴리오 재정비에 나섰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아직까지 반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K-뷰티 시장이 북미와 인디 브랜드, 뷰티 기기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사이 LG생활건강이 중국과 프리미엄 화장품에 집중하다가 결국 기회를 놓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는 10월 1일자로 새로 선임되는 이선주 사장의 리더십에 업계 관심이 쏠린다. 신임 이선주 사장은 글로벌 시장과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 30년간 몸담으면서 '키엘', '입생로랑', '메디힐', 'AHC' 등 다양한 브랜드를 키워낸 마케팅 전문가이자 경영인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 출신으로 다양한 브랜드 마케팅 및 사업 경험에서 나오는 탁월한 마케팅 감각을 발휘해 생활건강 화장품 사업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해 영입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정애 사장에 이어 두 번째 여성 CEO로 내정된 이선주 사장이 급변하고 있는 뷰티 시장에서 LG생활건강 실적을 반등시킬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한 뷰티업계 관계자는 "외부 출신인 이선주 사장이 LG생활건강 새 사령탑으로서 앞으로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업계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moone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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