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정부와 여당이 금융당국 조직개편안을 전면 철회하면서 금감원은 한숨을 돌렸지만 '공공기관 지정'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가 내년 1월 재지정 여부를 판단할 수 있어 예산, 인사 통제와 감독 독립성을 둘러싼 논쟁은 이어질 전망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5일 당정대(더불어민주당·정부·대통령실)는 정부조직법 개정 과정에서 금융위원회 해체 및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등 금융당국 개편안을 제외하기로 최종 정리했다. 금융 관련 정부 조직을 6개월 이상 불안정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경제위기 극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다.
윤태완 비상대책위원장은 금융감독체계 개편 철회 발표 직후 "금소원 신설이 보류된 것은 금융소비자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하겠다는 업무혁신 의지를 표명한 금감원 직원들의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비대위는 우리의 모든 업무가 금융소비자보호를 중심으로 집행·실행될 수 있도록 기본에서부터 변화하는 큰판짜기를 적극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약 4개월간 금융권을 뒤흔든 조직개편 논쟁은 원점이 됐다. 개편을 둘러싼 현재의 '옥상옥' 구조 관련 논쟁과 현장 혼선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현행 금융위–금감원 투톱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다만 이는 '공공기관 지정' 문제와는 별개다. 공운위 결정에 따른 지정·해제는 정부조직법과 무관하게 이뤄지며, 지정 여부는 내년 1월 회계연도 개시 후 1개월 이내에 판단될 수 있다. '조직개편 철회=지정 무산'은 아닌 셈이다.
법과 절차는 명료하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6조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매 회계연도 개시 후 1개월 이내에 공공기관을 새로 지정·해제·구분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시행령은 주무기관장이 사전에 대상기관을 통보하도록 했다. 일정상 내년 1월 전후 공운위가 금감원의 지위를 다시 논의할 수 있는 구조다. 지정이 이뤄지면 경영평가·예산편성·정원·보수 등에서 정부 통제가 강화되고, 기관장 해임 건의 가능성까지 포함한 인사·거버넌스 영향이 확대된다. 반대로 해제 또는 현상 유지는 감독 독립성·기동성을 강조하는 선택이다.
논쟁의 핵심은 '독립성 vs 책임성'의 균형점이다. 찬성론은 막강한 검사·제재 권한을 가진 감독기관에 대한 외부 견제·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대론은 예산·인사 통제가 강화되면 정책·정무 변수에 휘둘려 검사·제재의 중립성이 훼손될 위험이 커진다고 본다. 이 대립은 과거 전례에서도 드러난다. 금감원은 2007년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지만 독립성 논란 끝에 2009년 지정이 해제됐다. 당시 경험은 '경영평가를 통한 책임성 확보'와 '검사·제재의 전문·중립성' 사이의 충돌을 생생히 보여줬다.
금감원 노조 비대위는 개편 철회 직전과 직후 연속 집회를 열며 공공기관 지정 반대 기류를 분명히 했다. 24일 밤 국회 앞 야간 집회에는 약 1500명이 모였다. 비대위는 "독립성과 중립성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가치"라며 내년 1월 공운위 결정을 앞두고 '소비자보호 성과'로 여론을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홍콩 H지수 ELS 사태 후속조치, 판매규율 정비, 불완전판매 시정 등 현안 처리에서 성과를 가시화하겠다는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정치와 정책 환경도 변수다. 당정은 조직개편 논쟁을 접고 '생산적 금융', '소비자보호' 등 정책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기류다. 이런 상황에서 공운위가 '책임성 보강'을 이유로 지정을 택한다면, 금감원의 조직·예산·평가 체계는 대폭 달라진다.
반대로 현상 유지가 결정되면 금감원은 독립성 프레임을 바탕으로 현안 대응의 신속성과 전문성을 증명해야 한다. 내년 1월 전후 공운위 판단은 단순한 지위 변경을 넘어 감독 거버넌스의 방향을 재정의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공공기관 지정이든 현상 유지든 감독의 중립성과 소비자보호 성과를 함께 입증하지 못하면 이번 논쟁은 또 다른 형태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감독의 중립성과 기동성은 생명이다. 다만 검사·제재 권한이 큰 만큼 책임성의 외부 점검도 피할 수 없다"며 "어디에 균형점을 놓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억원 금융위원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행정·감독 기능 쇄신을 위해 공조체계를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이 위원장과 이 원장은 이날 오전 8시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장 접견실에서 긴급 회동을 가졌다. 당정대의 결정으로 금융행정·감독체계 개편이 제외된 정부조직법 수정안이 지난 26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금융행정과 감독의 쇄신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위원장과 이 원장은 그간 금융당국이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며 당정대의 취지에 따라 금융 소비자 보호 기능의 공공성·투명성의 강화를 위해 뼈를 깎는 자성의 각오로 금융행정과 감독 전반을 쇄신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따라 금융 소비자 보호를 기능적·제도적으로 강화한다.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조직·기능·인력·업무 등의 개편을 추진한다.
이 위원장과 이 원장은 "금융위와 금감원이 원팀이 돼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