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정부와 여당이 금융위원회를 해체하고 금융감독위원회를 부활시키는 조직개편안을 확정했다. 금감원 소비자보호 기능은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떼어내고 국내 금융정책은 재정경제부로 넘기는 방안이다. 2008년 체제 이후 18년 만의 감독체계 대수술로,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입법이 진행된다. 노조는 '감독의 이원화'를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당국 수장들은 "정부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팽팽한 긴장 상태다.
17일 금융권과 국회에 따르면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조직법과 은행법·금감위설치법·금융소비자보호법 등 조직 개편에 필요한 10개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민주당 의원 166명 전원이 발의에 참여했다.
개편안의 골자는 명확하다. 금융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감독 컨트롤타워는 '금융감독위원회'가 맡는다. 금감원 내 소비자보호 기능은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분리·격상되며, 두 기관(금감원·금소원)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 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에서 예산기능을 분리한 재정경제부로 이관하는 그림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7일 고위 당정협의에서 해당 안을 확정했고, 시행 시점은 2026년 1월로 제시됐다.
권한 재배치도 쟁점이다. 개정안에는 금감위 위원 수를 9명→10명으로 늘리는 대신 금감원 부원장은 4명→3명, 부원장보는 9명→8명으로 축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사 임직원에 대한 중징계(문책경고 등) 일부를 금감원장 전결에서 금감위 의결사항으로 격상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소비자 분쟁을 맡을 금소원의 권한 범위와 금감위·금감원과의 지휘관계가 어떻게 규정될지가 향후 최대 변수다.
현장 반발은 거센 상태다. 금감원 노조는 지난 9일부터 여의도 본원 로비에서 검은 옷 시위와 로비 농성을 이어가며 "금소원 분리와 공공기관 지정은 이중감독과 효율 저하를 부른다"고 맞서고 있다. 700여 명이 참가했으며 전체 직원의 30% 규모에 달한다. 오는 18일에는 국회 앞 장외투쟁도 예고했다. 노조는 총파업 여부도 저울질하고 있다. 총파업 시 1999년 1월 금감원 설립 이후 26년 만의 첫 파업이다.
또 금감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전날 성명서를 통해 "금소원이 신설되면 금융상품 개발, 판매, 민원 응대 등의 절차를 서로 다른 기구가 나누어 감독하게 된다"며 "오히려 소비자 피해가 늘고 금융사와 시장은 두 개의 감독기구 사이에서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 비대위는 약 30명의 노동조합원으로 구성됐다.

반면 당국 수장들은 수용 기류를 보이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취임 직후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 공직자로서 그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밝혔고, 이찬진 금감원장도 전날 임원회의에서 "금감원은 정부 결정을 충실히 집행할 책무가 있다"고 공식화했다. 두 수장의 메시지는 현 체제 안에서 혼란을 최소화하며 개편을 준비한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아울러 이들은 조직개편 취지가 부합하도록 세부사항을 차분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첫 회동을 하고 금융정책·감독방향과 관련해 '원팀'으로 일관성 있게 대응해 나가자고 약속했다.
금감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업무 분리 등 개편 세부안 논의에 참여할 입법지원 태스크포스(TF) 가동 지시도 내려졌다. TF는 이세훈 수석부원장을 단장으로 여당이 발의한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 후속 입법 과정에서 금감원의 의견을 적극 개진할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인 국민의힘과 합의 없이도 정부조직 개편안을 강행하겠다는 분위기다. 금융당국 조직개편을 위한 법률 개정이 빠르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무위의 법안 상정이 필수이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추진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최장 180일동안 상임위에 계류된 뒤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으로 올라가게 된다.
다만, 정책·감독·소비자보호가 재경부–금감위–금감원·금소원으로 분리되면 검사·제재와 민원·분쟁 동선이 두 갈래로 나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선 자료 제출 창구와 제재 절차의 중복 대응 비용을 우려하고 소비자 측면에선 분쟁 처리의 속도와 권한 연계가 관건으로 꼽힌다.
입법·시행까지는 변수가 남아 있다. 정무위 심사와 본회의 통과, 대규모 조문 정비 등 절차 부담이 크고, 야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권한 배분과 조직 지위가 조정될 여지도 있다. 일정이 지연될 경우 감독·제재 절차와 민원 시스템 개편, 인력 배치 등 후속 작업도 함께 밀릴 수 있다. 일각에선 새 체제의 명확한 사법·책임 구도와 공시·상환·검증 같은 감독의 기본 원칙이 먼저 제도 문구에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과 감독 창구가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 금소원으로 분할되면 대응 업무가 과중해지고 같은 사안에 대해 기관별 메시지가 엇갈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