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이중삼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를 두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니냐"고 직격하며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안전 불감증에 갇혀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도 대형 건설사 CEO들을 불러 사실상 경고장 메시지를 날렸지만, 사망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만 현대엔지니어링·대우건설·GS건설·포스코이앤씨·롯데건설·DL건설에서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했다. 안전 구호와 사과문은 쏟아지고, 대책이 마련된다지만, 노동자의 생명은 매주 벼랑 끝에 놓여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국회도 최근 한 달간 규제 강화 법안 25건을 쏟아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복 규제와 처벌 강화보다 근본 원인 진단과 현장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산재 관련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반복적 중대재해 사고를 일으킨 기업에는 단호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산재 단속·예방 등을 강조하고 체불임금·건설하도급 문제를 삼았더니, 이게 건설경기를 죽인다고 항의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사람 목숨을 그렇게 하찮게 여기느냐"고 업계 볼멘소리를 일축했다. 중대재해 사고 발생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필요성도 짚었다. 이 대통령은 "형사처벌보다 과징금이 효과가 있다"며 "(중대재해) 발생 시 추락 방지 시설에 드는 비용 곱하기 몇 배, 매출의 몇 배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규정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중대재해 사고 관련 중앙 부처 장관들도 주요 건설사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김영훈 고용부 장관은 지난달 14일 열린 '건설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20대 건설사 CEO 간담회'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은 10대 경제대국, K컬쳐 선도국가라는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안전은 노사 모두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건설산업은 밑으로 내려갈수록 돈은 줄고 위험은 그대로 전가되는 다단계·불법 하도급이 문제"라며 "비용을 아끼려다 반복되는 사고는 절대 용인될 수 없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1일 국토발전전시관에서 10대 건설사 CEO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정부의 건설현장 안전 강화 방안을 설명하고, 업계의 애로 사항을 청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 사고 터질 때마다 사과…그러나 사고 반복
정부가 잇따라 산재 근절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안전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는 10대 건설사 현장에서도 사망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 기업이 매년 발간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각종 안전관리 체계가 갖춰져 있다고 적혀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산재 사고가 터질 때마다 건설사들은 CEO 명의의 사과문을 내거나 직접 고개를 숙인다.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안전관리비 확대, 전담 TF 설치, 교육 강화 같은 대책도 내놓는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현장에서 사고가 반복된다. 보여주기식 사과에 그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에 법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이 지났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산업재해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법 시행 전보다 유의미하게 줄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중처법이 산업재해 전반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지 않았다며, 입법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동영 국회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 입법조사관은 "기업 스스로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사전에 위험성 평가를 소홀히 한 기업에는 경제적 불이익을 주고, 충실히 이행한 기업에는 세액 공제나 공공입찰 가점 같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 최근 한 달 새 건설업 규제 법안 25건 발의
국회도 움직이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7월 21일부터 8월 24일까지 발의된 건설 관련 법률안은 55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25건이 규제 강화 내용을 담았다. 대표적으로 사망사고 발생 시 매출의 3% 과징금 부과(건설안전특별법), 작업중지권 행사 근로자 불이익 금지(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가 있다.
전문가들은 선언적 구호보다 실질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처벌 강화보다는 근본 원인을 분석해 산업 구조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범부처 차원의 건설현장 산재 사망사고 방지 종합대책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국회가 같은 시기에 처벌 위주 법안을 잇달아 내는 것은 위축된 산업 환경을 더 얼어붙게 해 결국 국가 경제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설산업 내 산재 발생 원인이 단순히 규제나 처벌 부족 때문만은 아닌 만큼, 중복 규제와 처벌 강화보다는 근본 원인을 짚고 이를 토대로 산업 체질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안전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처벌 일변도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규제와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며 "불법 하도급 관행과 고령·외국인 중심의 인력 구조 등 뿌리 깊은 산업구조를 바로잡지 못하면 산재 근절은 요원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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