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미국 이민 당국의 한국인 노동자 체포·구금 사태가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 주가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업계는 생산 차질과 비용 부담 확대 가능성을 우려한다. 단기적으로는 주가 하방 압력이 불가피하며,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의 대응력과 정부 정책 방향이 주가 흐름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개장 직후 2%대 약세를 보였다. 미국에서 발생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의 여파로 풀이된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낙폭은 일부 축소됐다. 오전 10시 55분 현재 현대차는 전 거래일 대비 0.91%(2000원) 내린 21만8000원에 거래되고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0.29%(1000원) 상승한 34만4000원을 기록 중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은 조지아주 서배나 소재 HL-GA 배터리회사에 대한 단속 작전으로 475명을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 약 300명을 포함해 총 475명이 체포·구금됐다. 적발된 인원 대부분은 B1·B2 단기 방문 비자나 전자여행허가제(ESTA) 등 취업이 불가능한 신분으로 입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가는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공장 설립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양사의 내년 실적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LS증권은 8일 LG에너지솔루션의 목표가를 기존 30만2000원에서 30만원으로 하향 조정하고, 투자 의견 '중립'을 유지했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그룹의 '현대차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 시설 공사에 차질이 생겼다"며 "내년 예정된 현대그룹향 미국 판매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HMGMA는 2023년 5월 합작법인 설립 계약 체결 이후 약 5조700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배터리 생산시설로, 연간 30GWh 생산 능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배터리셀은 HMGMA 부지 내에 있는 현대모비스로 옮겨져 배터리팩으로 제작돼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 등에 공급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태로 미국 내 22개 한국계 공장 건설 현장이 가동을 멈췄다"며 "공사 지연과 인건비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대체 인력 확보도 쉽지 않다. 비자 제도 개선 없이는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 전반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현장 혼란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주가의 하방 압력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두 기업 모두 북미 시장에서 성장 모멘텀을 확보하고 있지만,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글로벌 투자자들은 보수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외국인 자금 유출세가 확대되면 추가 하락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당장 대체 인력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에 체포된 인력 상당수가 배터리 공장 건설 경험이 있는 숙련 인력이다. 이들이 대거 추방된다면 HL-GA건설은 사실상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이날 보고서에서 "미 정부는 자국 노동자 보호를 위해 외국인 취업 비자 발급에 연간 쿼터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에 인력 수급 한계로 작용한다"며 "미국 내 대형 프로젝트 전반에서 공정 차질과 원가 상승 요인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한국인 대상 특별 취업비자 신설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한국은 전문직 비자(E4) 신설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자국 내 일자리 축소 우려를 이유로 거부했다. 이후 한국인에게 매년 1만5000개의 E4 특별 비자를 발급하는 내용을 담은 '한국 동반자 법안'이 2013년부터 미 의회에 계류돼 있으나, 10년 넘게 진전이 없다. 결국 정부가 직접 나서 비자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에서 커지고 있다.